죽음을 배우는 시간 -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
김현아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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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병원으로 떠넘겨진 다음 수순은

당연히 죽음이 치료해야 하는 질병으로

둔감하는거에요"

죽음을 배우는 시간중 '의료인문학 수업I'

나는 호스피스 병동이 있는 병원에서 일을 한다.

매일 오전, 오후로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분들을 위한 병동 약과 마약진통제를 올려 보내는 것도 내 일 중 하나다. 입원기간이 길다보니 그 분들은 나를 몰라도 나는 그 분들의 이름과 병력을 대충 기억하게 된다. 매일 루틴하게 반복되는 일이지만, 절대로 익숙해지지않고 마음이 쿵!떨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바로 환자의 사망으로 인한 '마약 반납'이다. 밤새 안녕이라고 어제도 그 분들의 '통증을 가라앉혀주기를 바라는 평안함'을 기원하며 올려보낸 약들이 그 분들의 사망으로 다시 약제과로 돌아오는 일은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죽음'을 자주, 아주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나를 늘 겸손하게 만드는 일상이기도 하다.

여태 살면서 내가 누군가의 임종의 과정을 아주 가까이서 본 것은 딱 두 번이다. 우리 아빠와 나의 가장 친한 친구 경이.

아빠의 죽음은 내가 열세 살되던 해 1월이었고, 공교롭게도 친구의 죽음은 내가 마흔 셋되던 해 1월이었으니 딱 30년의 시간의 간극이 존재한다. 둘 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기에 지금도 그들의 마지막은 어제 일처럼 생생할 뿐더러 마음이 아프다. 이들과의 이별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은듯 담담하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십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밝은 표정으로 살아왔지만, 그들의 부재로 인한 시간은 내겐 참 힘들었음을, 어쩌면 지금까지도 나에게 영향을 주는 일이 아닐까 싶다.

둘 모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빠도, 경이도 모두 30대 후반에 암발병이 되었고, 수술-항암치료를 거쳐 딱 5년을 더 살고 가셨다.

지금도 엄마가 30년 넘게 살아온 집 안방 침대에서 누워계시며 성경을 읽거나 무언가를 계속 쓰고 계셨던 아빠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아빠는 그 방에서 우리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돌아가셨다. 어린 내 눈에도 이제 아빠가 더이상 고통스럽지 않고 평안하게 잠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꺼져가는 촛불을 바라보듯 아빠의 생명이 꺼져가는 모습을 쭉 지켜보았다. 비통한 목소리와 몸짓으로 침착하게 아빠의 죽음을 준비해주시는 할아버지가 계셔서 너무 다행이었다. 이제는 할아버지도 돌아가셨지만, 지금도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아빠를 만지시던 할아버지의 표정과 목소리가 떠올라서 눈물이 난다. 아빠가 돌아가신 1980년대까지도 집에 걸려있던 '근조'등을 심심치않게 만났던 것을 보면 (1970년대에 돌아가신 나의 친할머니, 외할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고, 아빠보다 십 년을 더 살고 가신 친할아버지도 집에서 돌아가셨다) 죽음의 장소가 내가 익숙하게 생활했던 그 곳이며,임종의 순간에 내가 사랑했던 가족과 친지들,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마무리가 된 것 같은데, 지금은 보기 힘든, 그래서 경험하기 힘든 장면이 되어버렸다. 그래서인가? 언젠가부터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을 삶과 멀리 떨어뜨려 생각하며 살게 된 것 같다. 모두들 '죽는다'는 불변의 명제를 알지만, '내가 죽는다'는 사실은 현실감있게 다가오지 않는 법이니까.

격변하는 30년의 시간이 지났으니 내 친구 경이는 이 책에서 기술한 '병원비지니스'의 정석처럼 살다가 떠났다. 내 친구 경이는 호스피스 병동으로 갈 순번을 대기하며(죽음이 순서가 있는 것도 아닌데 호스피스 병동을 미리 예약대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 때 알았다) 병원 1인실에서 나와 친구 남편과 야간 당직 의료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암이 전이되어 힘든 큰 수술도 하고 다양한 항암치료를 했지만, 이 책에서 서술한 딱 그 마지막 모습으로 세상과 이별했다. 아직 죽음을 맞이하지 않은 대부분의 우리의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임종을 앞둔 환자와 완화의료 전문의 8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가장 평화로운 임종은 다음 세가지 조건을 충족한다.

1) 불안함에서 벗어날 것

2) 혼자서 임종하지 않을 것

3) 아이들과 함께 있을 것

모두 병원, 특히 중환자실 임종에서는 지켜지기 어려운 조건이다. (죽음을 배우는 시간 중 '노화에서 죽음으로')

노화로 인한 자연사로 죽든지 중병으로 죽든지 사고사이든지 우리의 마지막 모습은 아무도 모른다. 그것을 선택할 권리가 우리에겐 애초부터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당장은 아니더라도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들이 허락된 것에 대해 감사하다.

이 책의 말머리에 있는 것처럼, 병원의 '죽음 비지니스'에 속지 않고 원하는 방식으로 생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죽음의 각 단계에서 준비해야 하는 것들을 제시해주는 '메뉴얼'같이 느껴져서 내게는 유용했다. 그동안 '죽음'을 다소 감상적으로 기술했던 책들과는 달리 나의 마지막을 어떤 모습으로 마무리해야하는지 막연하게 outline을 그린 것 같다. 날마다 살기 위해 열심히 고군분투 하던 우리 모두가 맞이할 삶의 종착역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우리가 겪게 될 신체적 증상을 알려준 것도 고마왔고, 완화 치료를 어떤 방향으로 결정해야 할지 생각이 정리되었다. 나도 평소에 이 책에서 예시를 든 노마할머니나 체리할머니처럼 살다 가고프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그런 분들의 실 례를 만나고 나니 자신감이 좀 생겼다고나 할까?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라

지금 그들을 보러 가라"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인생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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