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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브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평점 :
"허리는 위로. 어깨는 아래로. 등은 그 사이에. 백 투 더 베이직!" -본문 75쪽
소설 속 강물 위에 몸을 던지려고하는 김성곤 안드레아의 모습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거듭된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앉은 그는 죽음을 결심하지만, 그가 원하는 죽음마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소설 극초반부, 김성곤이 죽음을 결심한 후 서울역을 찾았을 때 TV 화면 속에서는 성공한 사업가 '글렌 굴드'가 나와 강연을 한다. '변화'를 이야기하는 그. 이때 김성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본인이 실제로 그를 만났다면 사업 투자를 받아 인생이 바뀌었을지 모른다며. 하지만 이내 체념한다.
소설 후반부, 노력과 운으로 유명해진 그의 '지푸라기 프로젝트'는 실제로 글렌 굴드와 만나게 된다. 게다가 글렌 굴드는 그에게 '친구'라며, 노넷과 합작하기로 한다. 그런데 끝은 어떤가. 아이디어만 성곤의 것이지 그외 기술에는 문외한인 그는 자연스럽게 프로젝트에서 빠지고, 기존의 실패한 삶으로 돌아가게 된다. '당신은 바뀌지 않는다'는 아내 란희, 아영의 외면과 함께.
사실 성곤의 '지푸라기 프로젝트' 실패는 처음부터 예견되어 있었다.
소설 초반부, 그가 죽는 방법을 바꾸려고 마음을 먹자 2년 후 그가 다시 강물에 몸을 던질 것임을 대놓고 언급한다.
박실영을 찾아가 '영감님 덕에 제 삶이 괜찮아졌다'는 말에 "그럴 때 조심해야 한다"는 영감님의 충고에도 귀기울이지 않는 김성곤 안드레아.
현실적인듯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라 좋았다.
작심삼일이라 하지 않았는가. 노력으로 꽤 오랜 기간 습관을 형성하더라도 종국엔 포기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습관을 형성한 기간이 길면 길수록 다시 시작하기도 쉬운 법이다.
"잘 살펴봐요, 지나온 삶을. 엉망이기만 한 삶은 있을 수가 없어요. 애초에 그런건 불가능해." -본문 258쪽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어느 사업 파트너에게든 '친구'라고 칭하며 사업적으로 이용하는 글렌 굴드의 삶.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인생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박실영 영감님의 삶.
둘 중 어떤 삶이 진짜 성공한 삶일까.
"분명히 그 애는 회색이었다. 하지만 진한 회색, 연한 회색, 베이지가 섞인 회갈색, 때론 대리석처럼 빛나는 영롱한 조각을 품은 다채롭고 신비한 회색이었다." - 본문 96쪽
'아싸'로 외면받았지만 서로 의지하며 성공했다가도 실패하는, 그럼에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성곤과 진석은 끊임 없이 도전하는 '지푸라기'이자 서로의 '튜브'가 아닐까.
*리뷰 목적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