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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철학의 구성원리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3년 1월
평점 :
태권도는 우리 고유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그런 태권도 인구가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 퍼져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도올은 '우리나라엔 태권도가 없었다'고 말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반발할 것이 뻔한 데도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국수주의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는 현실을 용납할 수 없는 학자적 양심 때문이다.
그 계기는 일본 유학 시절 한 카라테 유단자의 시범동작을 보고 나서, 태권도의 형과 카라테의 '카타'가 일거수일동작, 진행 방향, 형태, 형의 이름까지 완벽하게 동일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카라테가 태권도의 원형인 것일까, 아니면 카라테가 태권도를 본뜬 것일까. 도올은 여러 근거와 고찰을 통해 우리가 지금 태권도라 부르는 무술의 조형은 완벽하게 '메이드 인 재팬'아며, 1955년 4월 11일 이전에는 '태권도'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다고 밝힌다.
누구나 태권도를 '태권도(tae-qwond-do)'라고 발음하지 않고 '태꿘도'라고 발음한다. 이것은 오래 전부터 내려온 것으로 여겨지는 우리의 전통 무술 태껸으로부터 그 발음이 자연스럽게 결정된 것이지만, 태껸조차도 그 원형에 대한 근거가 확실치 않고, 무술로서의 태껸보다는 놀이로서의 태껸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설명이 있다. 여기서 밝히는 태권도의 발생은 1952년 어느 날, 1군단 참모장이었던 최홍희가 이승만 대통령 앞에서 카라테 시범을 보였던 것에서 일어난 것이다. 시범을 본 이승만 대통령은 "태껸이구먼."이란 한 마디를 던졌다 한다. 카라테(공수도, 당수도)란 것이 알고 보니 태껸과 같은 것이었다는 대통령의 이 말은, 당시의 카라테 사범들에게 '태껸'이란 말을 그들의 무술과 연관시켜야 한다는 큰 부담을 안겨주었다.
고심하던 최홍희 장군은 태껸의 이두식 표기(한자의 음을 따와서 우리 말을 표기하는 법)인 '태권(跆拳 : 밟을 태, 주먹 권)'이란 말을 창안하였는데, 여기서 쓰인 '태'자는 강강수월래를 하면서 놀 때 땅을 밟는 'step'의 의미이지 무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글자이다. 이것은 오로지 태껸의 '태'라는 발음을 맞추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끼워맞춘 글자인 것이다. 또한 태껸을 비롯한, 널뛰기, 제기, 그네, 씨름 등 우리의 문화 유형은 모두 손보다는 발 중심의 기예였기 때문에 반드시 足(발 족)자가 들어가는 한자를 써야했다.
한 마디로 우리가 태권도라고 알고 있는 무술은 카라테로부터 온 것이며, 카라테 역시도 일본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카라테를 국제적으로 크게 알린 인물은 바로 최영의(오오야마 마스타쯔)라는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이미 우리는 카라테식 태권도가 아닌 '경기 태권'을 발전 시켜 현재 그 어느 무술보다도 국제적인 스포츠로 자리매김 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품세 보다는 겨루기 위주의, 즉 무술이란 결국 상대를 제압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는 실전지향적 독자성이 큰 역할을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도올이 이렇게 언뜻 이해하기 힘든 책을 쓴 이유가 무엇일까? 왕년의 홈런 타자였던 해태 타이거스의 김봉연 코치가 도올을 찾아 와서 고민을 털어놓으며 조언을 구했다. 매일 힘든 훈련과 승부에 모든 것을 거는 선수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은 술과 여자, 이 두 가지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책을 보라고 해봤자 만화책조차 보기가 어려운 상황인데, 무슨 딴 방법을 가르쳐줄 수는 없겠느냐는 아주 당혹스러운 질문을 받았다. 그에 대한 답에 이르서야 비로소 도올이 이 책을 쓴 이유가 나온다.
우리의 현대 교육은 데카르트의 오류에 지배받는 서양식 커리큘럼을 따르고 있는데, 그것은 '공부(工夫)'란 개념적 조작에 의한 인식의 확충이라는 하나의 정신 원리에만 매달려 있는 것이다. 도올은 개념적 공부가 아닌, 몸의 동작을 반복해서 얻은 달인의 경지 역시 동일한 가치선상에서 봐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김봉연 코치에게 이렇게 말했다.
- "그들에게 영어단어를 외우게하고 임마누엘 칸트를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야구선수는 야구방망이 하나로 족합니다. 그러나 야구방망이에선 과연 철학이 안나올까요? 야구방망이 그것이 바로 그들을 좋은 사람(Good Man)으로 길러낼 수는 없겠습니까?" (138쪽)
- 인간의 냄새가 나는 모든 것이 철학의 대상이다. (1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