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에 숨겨진 이야기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정효석 옮김 / 문원출판 / 1995년 8월
평점 :
절판


사르트르-어느 누구도 소설가로 태어나지 않는다.

사변적인 말이지만, 이 책을 출간한 출판사에서 판매량을 의식한 탓인지 이 책을 소설이라고 소개한 오류를 범했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요사가 로물로 가예고스 상을 받은 '녹색의 집'의 창작동기와 집필시의 어려움, 그리고 소설관에 대해서 피력해 놓은 수필이다.

뒷면에는 원문을 그대로 수록해 놓을 만큼 책의 분량이 작은 이 책은 그가 산문작가로서의 천재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게 '그건 오해요' 라고 항변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나는 소설의 결과물로서의 비교잣대로 보다 그의 창작 스타일 자체가 보르헤스,푸엔테스,마르케스보다 훨씬 재능이 타고난 작가라고 믿고 있었다. 물론 나는 그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가 자신의 재능에 대해서 겸손을 떤 문장 몇 개를 인용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문학의 기능에다 자신의 생활을 포함시킨다면 작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주인들에게 헌신하는 생활의 기능에 문학을 포함시키려 한다면 결과는 비극의 대단원이 될 것이다*

나는 문학이 인류에 기여한다고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글을 쓴다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회의적이다. 물론 훌륭한 저작물은 인류에게 있어 축복이라는 말을 부정하고자 함이 아니다. 글쓰기는 자신을 위한 일이어야지, 만인을 계도하거나 주입시키는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나는 믿고 있다. 요는 일차적으로 모든 일은 자신을 위한, 자신의 불완전한 정신 세계를 인정하면서 자신의 정신 질환을 치유하는 일에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만 진실한 글이 나온다는 것이다. 사실 사회사업가에 비한다면 아무런 가치도 만들어낼 수 없는 글쓰기에 진정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이유란 무엇인가?

*영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조각가와 화가, 그리고 시인과 음악가의 귀에 형상과 가락을 일러주는 무엇인가일지 모르지만 소설가에게는 결코 그것이 찾아오지 않는다*

물론 이 문장은 과장을 동반한 역설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역설은 하나의 사실에 기초한 것이다. 산문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천재성보다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집념이 더 우선시된다고 그는 말하고 싶은 것 같다. 그의 저작물 녹색의 집은 아주 오랜 구상 끝에 다시 시도한 작품이고, 하나의 소설을 쓰는 데 너무 많은 시간과 정열을 쏟는 데 지친 나머지 그는 두 편의 다른 소설을 번갈아가면서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두 편을 하나로 합쳐버린, 그의 의도는 실패했지만 결과는 중남미의 가장 권위있는 상을 받게 만든 작품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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