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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환상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199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발자크 하면 먼저 떠올리는 작품은 물론 '고리오 영감'이다. 장편 소설의 분량치고 적당한 양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소설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론 그의 걸작인 '외제니 그랑데', '골짜기의 백합' 등과 '고리오 영감'을 포함해서 이 작품은 단연 압권이다.
고리오 영감에서 결여된 단점들이 많은 부분 보완되어 있다. 밀도에 보다 신경을 쓴 작품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평소 한 달에 두 권 정도의 장편을 써 내려간 속필가로 알려진 그가 이 작품을 완성하는 데는 10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물론 작가의 노력의 양과 작품의 질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
'고리오 영감'을 쓸 때보다 조금 어깨에 힘을 뺀 고급스런 유머로 전편을 이끌어나간다. 무엇보다도 '뤼시앵'과 '다비드'라는 인물의 창조에 그의 위대성이 있다. 두 인물은 발자크 자신의 내면에서 끄집어낸 것이다. 뤼시앵은 그가 되고 싶은 인물이고, 다비드는 그가 닮고 싶지는 않지만 그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그린 것이다. 이 인물들은 '골짜기의 백합의 화자처럼 비객관적인 인물도, 자기연민에 빠진 인물도 아니다.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작가의 지나친 간섭은 오늘날 보기에는 어느 정도 결함으로 간주된다. 그의 소설 속에 나타난 배경은 사건이 일어나는 동인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인물의 행동과는 별개로 펼쳐진다. 그리고 전지적인 화자는 하나의 문장 속에서 두 사람의 성격을 판단할 뿐만 아니라 인물의 심리까지 해석해 낸다. 오늘날 리얼리티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인물의 심리 속에 다른 인물을 관찰하는 정도로 제시되었어야 하는 부분이다.
내용으로 압도되기도 하지만 분량으로도 압도되는 작품이다. 조금 더 길어도 괜찮지 않을까 아쉬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