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불났어
아리엘 도르프만 지음, 한기욱 옮김 / 창비 / 1998년 2월
평점 :
절판


화자인 나 루초는 리또께로 전출을 가기 전 집으로 휴가를 받는다. 그는 평소처럼 걸어서 집으로 오지 않고 버스를 타고 오는데 공교롭게도 ‘오늘도 어제와 그제처럼’ 백수였고, (아마 앞으로도 백수일 것이 분명한) 아버지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루초는 소설의 첫줄에 이렇게 서술한다. ‘어떤 개자식도 나보다는 운이 좋을 것이다.’ 이 첫 문장은 첫 문단과 결합해서 독자에게 몇 가지의 (허위일 수도 있는) 정보를 전달하는데, 화자의 성격이 다소 감정적이고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가 결코 좋아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표현은 작가와 화자와의 거리는 한없이 떨어진, 그래서 독자와 화자의 거리를 단축시킨 의도적인 표현이다. 그러면서 루초는 아버지에 대한 악감정이 단순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분노나 공포를 유발할 만한 이전의 특정한 사건이 있었는가 하고 독자에게 의구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화자가 버스를 내렸을 때 기다리고 있었으면 하는 사람은 ‘이웃에서, 노조에서, 아빠한테서, 어머니회’에서도 마스코트였던, ‘귀여운 알카쎌쩌 아가씨’ 마리아 에우헤니아였다. 하지만 아버지와 자기의 사이를 중재해 줄 그녀는 보이지 않고 루초와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온다. 군부독재자에 대한 나쁜 감정을 가진 아버지는, 귀가 길에서 주위에 널려 있는 동네 백수들과 아이들에게 한없이 친절하지만 루초에게는 군복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그와 거리를 두고 걷자고 요구한다. 그러면서 예전 실업자가 아니었을 때 (그리고 자신이 군인이 아니었을 때) 부자관계가 얼마나 다정했는지 회상하면서 아버지와 아들은 집이라는 ‘결승점’에 도달하기 위해서 달리기 시합을 한다. 아들의 자존심을 꺾지 않기 위해서 항상 ‘아슬아슬하게’ 져주었던 아버지는 지름길이라는 ‘비밀통로’를 이용해서 지지 않으려 했고, 군대에서 ‘엉덩이를 걷어차이며’ 경멸했던 훈련을 받았던 루소는 아버지의 노쇠함을 발견하고 속도를 늦춘다. ‘그는 엉망이 되어 있는데 나는 생기있고 팔팔한 모습으로 도착한다면 이겨봤자 무엇이 즐겁겠는가?’(24페이지) 그가 스스로 패배를 선택하고 도착한 집에는 ‘향긋한’, ‘환상적인’ 닭죽의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그 닭죽은 예전 행복했던 시절, 그러니까 ‘아버지가 직장이 있었고, 마리아 에우헤니아가 대학을 들어갈 준비를 했던’ 때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었다. 이런 닭죽의 냄새를 풍기는 주말은 루초의 생각대로 ‘내 생애 가장 암울한 날’이 되었다. 그 음식은 마리아 에우헤니아가 가정부로 나가면서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었고, ‘졸리고, 생기없고, 굶주려 보였던 세 명의 여동생들이 ’팔짝팔짝 뛰어오르고‘ ’무한한 에너지로 몰아치는 거센 태풍처럼 검고 긴 머리를 청순하게 흩날리게끔 만든 음식이었다. (하지만 여기 가족들의 말대로 마리아 에우헤니아가 가정부로 나갔는지, 아니면 노래반주기에 맞춰서 탬버린을 흔들고, 사장님들이라고 부르는 사내들의 구미에 맞춰서 리모콘을 조작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여기서는 제시되지 않고 있다)
루초는 닭죽이 든 뜨거운 국솥을 들고 아버지와 실랑이를 한다. 자신은 아버지가 싫어하는 군인 중에서도 가장 최악인, (아마도 군부독재자들에 대항하는) 반체제인사들을 수용하는 리또께로 전출을 간다고, 그래서 도망치는 자들이 보이면 쏴 죽일 수 밖에 없다고 그는 소리친다.
책의 서두로 돌아가면 작가는 두 명의 희랍비극을 인용한 구절을 읽을 수 있다.
엘렉뜨라 이방인! 내 불행을 비웃으려는 건가

이피게니아: 어머니와 떠나나요 아니면 혼자 가나요?
아가멤논: 혼자 간다. 네 아비도 네 어미도 없이.’

여기서 루초의 죄의식, 거대한 조직에 미약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의지로 거부할 수 없는 생의 비극과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아리엘 도르프만의 이 작품은 한때 경제의 실패 때문에 전체 인구의 1/4 이상이 실업자가 된 칠레의 현실(이것은 정부의 공식 집계에 불과하다. 어느 나라도 이런 부정적인 집계를 정확하게 발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많이 축소된 자료일 거라는 추정이다)과 군부독재의 폭력으로 인해 가정이 붕괴된 것을 격정적인 어조로 고발한다. 거대한 폭력 앞에 좌절당한 미약한 개인인 아버지, 나(루초), 그리고 그의 존재가 끝끝내 드러나지 않은 ‘마리아 에우헤니아’의 모습이 어찌 칠레만의 현실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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