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dts)(CJ한국영화할인)(Oasis)
CJ 엔터테인먼트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영화 오아시스에는 몇 가지 상징들이 보인다.도입부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한 '나비'와 '비둘기'에 대한 상징은 다분히 도식적이다.

영화 전편을 관통하는 두 가지 대립적인 사물들이 있는데, 그것은 '이상'을 의미하는 오아시스와 '현실'(그러나 비참한)을 상징하는 나무가 있다. 공주는 오아시스 속에 잠겨 너울거리는 나무의 그림자를 보고 불안해 한다. 단단한 현실 속에 뿌리박혀 있지 못하는 주변인으로서의 공주, 폭력적인 세상에 자신의 존재가 흔들리고,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공주의 모습은 '흔들리는 나무', 세상에서는 그림자처럼 존재가 미약한 '나무의 그림자'와 놀랍게 닮아 있다. 그리고 이 나무는 (아마) 서사의 결정타를 날리기 위한 일종의 복선으로 의도된 것이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나무를 자르는 장면은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연상할 수 있는데, 이 작품의 성공은 마지막 잎새의 패러디든 아니든 아마도 이 부분 때문이었을 것이다. 공주와 종두의 진실은 그들만의 것이었고, 아무도 그들의 말의 진위를 따지려 하지 않는다. 그 진실을 알고 있던 그들의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폭력에 마지막 대항으로, 공주의 강박적인 공포를 해소하려고 톱으로 부조리함을 종두는 썰어버리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종두는 사회부적응자라는 표피적인 의미를 가진 인물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원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진 예수와 많이 닮아 있다.

2.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
오아시스는 문제작이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제각각이었다. 장애인에 대한 모독이라고 혹평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여성에 대한 억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역시 적지 않았다. 특히 강간장면 때문에....
나는 종두가 공주를 강간하려다 실패하는 장면은 두 사람의 관계에 새로운 국면을 제시한다는 점, 그리고 (공주가 가족들과 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 당해온) 정신적 폭력은 육체적 폭력보다 치명적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에서 결코 빠져서는 안 될 요소라고 생각한다. 또한 종두가 강간죄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는 사건에 대한 복선으로서도 기능한다. 그리고 육체의 접촉과 거친 남자의 저돌성에 오늘날 얼마나 많은 남녀들이 결합하는가?
앞에서 나는 장애인에 대한 모독이라고 혹평을 한 경우가 있다고 얘기했다. 나는 오히려 비장애인, 그리고 한국인을 모욕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몇 가지 에피소드들을 예로 든다면, 장애인이 왔다는 이유로 장사를 하지 않겠다고 매몰차게 거절하는 식당주인, 동생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현대판 고려장을 기획하는 오빠내외(완전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종두의 가족은 그 성격에 맞는 행동들을 보이는데 반해 정말 오빠는 이해가 안 되는 인물이다), 이들은 지나치게 과장되었고, 편중되었다.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인 이창동 씨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된다. 그는 아마도 여러 장면에서 관객들에게 분노와 눈물을 유도하려 한 것 같다. 하지만 선과 악의 개념이 도식적이라는 혐의는 지울 수 없다. 일반적인 인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다. 그 오빠는 왜 동생을 그런 식으로 대해야할까,

그때 오아시스에 대해 가장 실망스러웠던 부분은 이런 부분들이었다. 하지만 뛰어난 요소들이 결함을 감춘 수작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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