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쥐스킨트는 대중적인 작가다.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순문학작가다. <비둘기>는 쥐스킨트의 미학에 정점에 달한 작품이다. <비둘기>는 20세기의 <외투>와 같다.  다만 고골의 육성은 보다 노골적인데 반해, 쥐스킨트의 서술은 보다 상징적이다.

작가는 인물에 대한 설명 대신 인물이 살고 있는 집의 정경을 묘사함으로써 암시한다. 그가 사는 집은 "꼬딱지"만한 방이며, 그가 소장하는 책은 "크로마뇽인과 청동기 시대의 주조기술" 등이다. 한 마디로 그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백 년 전의 아까끼의 모습이다. 외투의 도입부나 비둘기의 도입부는 모두 1.(외투와 24호실에 집착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2.(독자의 연민을 자극하기 위해서)비교적 선량한 인물이 세파에 얼마나 시달려 왔나를 서술한다. 물론 도입부에서는 아직도 캐릭터의 속성을 부여받지 못한 상태다.

나이가 오십이 넘었고, 그 많은 층계를 오르는 일이 가끔씩 힘에 부치고, 번듯한 부엌과 자기 혼자만 사용할 수 있는 욕실을 갖춘 제대로 된 아파트를 임대할 수 있을 만큼 봉급을 받게 되기는 하였어도 마찬가지였다. 12P

그 방을 아예 자기 것으로 구입함으로써 그것과 자신과의 관계를 영원히 깰래야 깰 수 없는 관계로 만들 생각이었다. 12p

 외투 하나면 더 이상 불만스러울 게 없는 아까끼의 소망과 무엇이 다른가. 그역시 방을 자기 소유만 할 수 있다는 소망에서 서사는 출발한다. 다만 이 인물 조나단의 성격은 고골리적이 아니라, 도스토예프스키적이다. 그는 더이상 인간을 믿지 못하게 되었으며, 사람들과 눈길이 마주치는 것을 끔찍히 싫어하는 광장공포증 환자가 되어버렸다.

 그러면 비둘기는 무엇일까? 비둘기는 작아서 두렵고, 초라해서 두렵고, 아무에게도 두려움이 되지 못하므로 조나단에게는 더욱 두려운 존재다. 누구에게 구원을 요청할 것인가? 누구에게 자신의 고민을 하소연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는 현대인이 가진 심각한 폐쇄성이다. 고골의 외투에서와는 나타나지 않은 특성이기도 하다. 콘크리트 벽에 갇혀 더이상 타인의 존재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은 현대인, 그러면서 정작 자신의 타인에게 뭔가를 원하는 현대인의 암울한 모습이다. 비둘기는 표면적으로는 있어 보이는 현대인의 자유가 실제 얼마나 통제되고 있는가 라는 상징의 훌륭한 매개체다. 우리는 결코 이 기괴한 인물의 강박관념을 보고 웃을 수 없다. 그건 곧 우리의 모습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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