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음악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평점 :
품절


1.오스터의 작중화자는 늘 의혹에 가득 차 있다. 인간은 시간 속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설령 시공에 대한 자유권을 획득하더라도 의혹은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인간은 신이 아니거나, 모두 신격화가 되어버렸으므로.
2.그는 어떤 작품에서든 창작동기나 영감을 얻은 지점을 소설 속에서 밝힌다. 그것은 자신의 가상 독자를 설정하는 행위처럼 느껴지는데, 이또한 그의 작품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다.
3.포크너와 오스터 보르헤스에게는 왠지 동양적인 정서가 느껴진다. 보르헤스가 불교와 도교에 심취한 반면 포크너와 오스터에게는 폐쇄적인 삶을 자주 그리는데, 그건 자기 학대의 행위이기도 하지만 정신적 충만감을 느끼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4.도덕성이 전면화된 작품은 소설의 전근대적인 일면으로 볼 수도 있지만, 소설에서 부각되는 도덕성은 작품의 질을 측정하는 중요한 가치기준이 된다고 나는 믿는다. 그는 인간의 보편적인 미덕에 반기를 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미학을 잃지 않는다는 건 그가 소설가로서 어느 경지에 도달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금을 상속받았지만, 그 돈을 고속도로에다 뿌리는 남자가 있다. 오스터의 중요한 인물들은 서사 속에서 항상 하나의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도입시기부터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다. 행선지를 정하지 않고 무작정 달리는 것이다. 가끔 인간의 행동을 보면 신기할 때가 있다. 현대인들은 여가 시간이 되어도 업무상의 패턴을 유지하는데, 그것은 무한한 반복으로 나타난다. 휴일에도 마음은 여전히 회사에 남아서 자신의 자리에서 뭔가를 만들고 수정하고 파괴하면서 지쳐 간다.
자동차 속에서 그는 회의한다. 거금을 조금 일찍 받았다면, 그러니까 아버지가 조금 일찍 돌아가셨다면, 집을 팔아치우지도 않았을 것이고, 아내와도 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의식들은 일종의 운명론적 회의다.
그리고 우연히 차를 타고 가는 도중 도박사를 만나게 된다. 점점 줄어드는 돈을 그 도박사에게 걸게 됨으로써 진짜 위기감이 조성된다. 오스터는 마지막 남은 자동차까지 빼앗아버림으로써 인물의 어떤 희망의 여지를 완전히 없애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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