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벽에 둘러싸여 있던 남자는 모래가 있는 바닷가를 찾아 떠난다. 바다는 어머니의 대지다. 그런데 어머니의 바다를 찾아 떠난 남자는 모래의 품에 안긴다. 그의 목적은 곤충채집이다. 벌레를 채집해서 사체에 핀을 꽂으려 한 한 남자는 마을사람들에게 산 채로 채집당한다. 곤충도감에 자신의 이름을 영구보존하려 한 남자는 실종자로 기억된다.남자가 찾고자 하는 벌레의 학명은 ‘연서 배달꾼’인데, 몸길앞잡이‘의 요염한 걸음걸이에 발목이 잡힌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 그를 보자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일종의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듯 보이는 마을의 노인은 어느새 남자의 가해자로 변한다. 휴가를 떠난 남자는 휴가지에서 끊임없이 모래를 파야 한다. 그의 직업은 어느 순간 교사(지시하는 자, 가르치는 자)에서 지시받는 자로 변형된다. 정형화되지 않는 물질, (부족한)물과 (넘치는)모래는 남자에게 공포/협박의 대상으로 인식된다. 모래 구멍 속에는 여자가 있다. 왜 마을 사람들은 생존에 적합하지 않은 곳에서 모여 사는 걸까? 모래는 점점 (마을)사람들의 삶을 갉아먹는다. 왜 (마을)인간들은 모래 위에다 집을 지어야 했을까? 이런 오류는 과연 수정이 가능한 것일까? 그 수정은 누가 해야 하는가? 수많은 아이러니와 은유들이 뭉쳐저서 거대하고 다양한 알레고리로 변한다. 그 해석은 독자의 몫이다. 작중 화자와 주인공인 남자의 육성은 자주 뒤섞이는데, 작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 같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