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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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시트가 낡아 뭉개진 소파에 앉아 읽던 만화 중에 기억나는 것이 있다. 프랑스의 만화를 번역한 것인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예사롭지 않아 원작자가 따로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면서 만화를 읽어 나갔다. 마지막 장에 아마 원작자의 이름을 밝혀 놓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쨌든 그 후 한참의 시간이 지나 <벽을 통과하는 사나이>를 읽었는데, 나는 이 소설을 읽자마자 그 만화의 원작자를 드디어 접하게 된 것을 직감했다. 내용(특히 본질적인 부분들이)은 많이 변형되어 있었다.  만화가는 대중의 코드에 맞게 성적인 부분만을 지나치게 강조해 놓았던 것이다. 

 마르셀 에메는 <동화적 상상력>을 구가하는 소설가다. 느낌은 조금 다르지만 귄터 그라스 역시 동화에서 모티브를 찾아내는 작가다. 그리고 마르셀 에메의 동화적 상상력은 바다를 건너 잠시 우회했다가 중남미까지 영향을 미친 작가다.  마르케스는 마르셀 에메의 동화적 상상력을 신화와 성서 쪽으로 변형해서 수용한 작가다. 뒤늦게 평론가들이 그를 2류에서 1류 작가로 평가를 조정하는 작업을 진행한 이유는 아마도 프랑스 전통의 계보를 잇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벽을 통과하는 사나이>는 또 한 사람의 아까끼이다. 그도 정서하는 사람이다. 이 소설은 마술적 리얼리즘의 원조격이라고도 할 수도 있다. 그는 상사에게 정서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야단을 맞는다. 그는 그 순간부터 상사에 대한 정면도전을 작정한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욕망이 느껴지지 않는다. 상사곯리기는 욕망이라기보다는 복수에 가까운 행위 같다. 상사가 사라지고 나자 그에게는 "대도"가 되고 싶다는 진정한 욕망을 가지게 된다. 그러니까 직장에서 상사는 욕망 자체를 거세시키는 인물과 다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욕망은 또다른 욕망 새로운 욕망으로 계속해서 확장되고 변형되고 왜곡되기 시작하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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