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이스퀼로스 비극 - 희랍어 원전 번역
아이스퀼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단국대학교출판부 / 1998년 10월
평점 :
절판
코에포로이는 국역하면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이 된다. 아마도 천병희 교수는 희랍어와 일 대 일 대응하는 모국어가 없어 번역하지 않고 놔 둔 것 같다. 사실 어떤 언어와의 번역도 일 대 일 대응은 가능하지 않다. 우리 말을 외국어로 번역해도 그건 마찬가지다. 그리스가 단지 신전에 제례를 바치는 문화가 발달했기에 코에포로이라는 명사가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이 작품은 오레스테이아 3부작의 2부에 해당한다. 1부와 2부는 3부로 가기 위한 중간 단계에 불과하다. 각 부가 끝나는 지점에 이르면 뭔가 마무리가 되지 않은 듯한, 이야기가 진행될 듯한 여운을 남기고 다음 부로 넘어간다. 그건 오늘날 열린 텍스트라고 말하는 개념과는 조금 다른데, 그것은 작가 스스로가 독자(관객)에게 던진 질문이 아직 어떤 식으로도 제시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트레우스 가문은 많은 그리스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은 제우스의 5대손이다.<제우스->탄탈로스->펠롭스(니오베)->아트레우스,튀에스테스(딸 펠로피아와 관계를 가져 아이기스토스를 낳음)->아가멤논, 메넬라오스->오레스테스, 엘렉트라, 이피게네이아)
제우스의 아들 탄탈로스는 신들의 전능성을 시험해 보고자 아들 펠롭스를 죽여 그 고기로 음식을 장만해서 신들 앞에 내놓는다. 모든 신들은 그 고기가 어떤 고기인지 알아차리고 수저를 들지 않았지만, 하데스에게 납치된 딸 페르세포네의 행적을 알지 못해 슬픔에 잠겨 있던 데메테르는 부주의하게도 어깨의 일부를 먹었다. 신들은 펠롭스를 도로 살려주고 없어진 어깨를 상아로 대치해 준다. 그리고 탄탈로스는 하데스에서 영원한 허기와 갈증의 고통에 시달리는 죄과를 치르게 한다.
탄탈로스의 딸 니오베는 테바이 왕 암피온과 결혼하여 아들과 딸을 각각 일곱을 슬하에 두는데, 어느날 쌍둥이 남매밖에 낳지 못한 레토 여신보다 자기가 자식을 더 많이 낳았다고 자랑하다가 신들의 노여움을 산다. 그래서아폴론은 아들 일곱을, 아르테미스는 딸 일곱을 모두 쏘아 죽인다. 그러자 니오베는 자식을 잃은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돌기둥으로 변해 버린다.
탄탈로스의 아들이자 아가멤논의 할아버지 펠롭스는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간다. 그는 엘리스 왕 오이노마오스의 딸과 결혼하려고 하는데, 그 조건은 오이노마오스와의 전차경주에서 승리를 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오이노마오스의 마부 뮈르틸로스를 매수하여, 경주 때 바퀴가 빠져 왕이 전차에서 떨어져 죽게 만든다. 하지만 펠롭스는 마부에게 보수를 주기는커녕 그를 바다에 던져 죽인다. 그때부터 그의 가문에 저주가 시작된다. 그의 아들 아트레우스가 뮈케나이의 왕이 되었을 때 튀에스테스는 아트레우스의 아내 아에로페를 유혹하려다 발각되어 추방된다. 후에 아트레우스는 화해하자면서 튀에스테르를 부르고는 그의 두 아들을 죽여 음식을 만든 뒤 잔치를 벌인다.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아챈 튀에스테르는 달아나면서 아트레우스 가문을 저주한다. 튀에스테르는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딸 펠로피아와 관계하여 아이기스토스를 낳는다. 그러니까 아이기스토스는 아가멤논의 고종사촌이자 삼촌인 셈이다. 아이기스토스는 아가멤논이 트로이로 원정간 사이에 그의 아내 클뤼타이메스트라를 유혹한다. 클뤼타이메스트라는 자신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출정의 제물로 바친 남편 아가멤논에게 원한을 품었고, 아이기스토스는 자신의 형제를 죽이고 자신을 추방한 아트레우스 가문에 대한 복수를 결심한다. 해서 아가멤논이 트로이를 함락하고 돌아온 날 아이기스토스와 함께 아가멤논을 죽인다.
1부 아가멤논은 아가멤논이 귀국해서 돌아오는 날을 시간적 공간으로 하고 있다. 죽음이 예비되는 것은 아가멤논과 함께 돌아오는 전리품이자 예언자인 카산드라에 의해서이다. 만약 이 작품이 셰익스피어나 라신에 의해 쓰여졌다면 살인이 일어나기 전 대사를 읊조리는 것은 클뤼타이메스트라의 독백체에 의한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아이스퀼로스는 오히려 클뤼타이메스트라에게 효부의 이미지를 초반에 심고 있다. 물론 이것은 아이러니의 효과를 만들어내기 위함은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당시 널리 알려져 있던 신화였으니까. 이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은 아트레우스 가문의 역사 혹은 야사를 대부분 죽 꿰고 있었으리라. 오히려 이 작품의 극적 아이러니는 클뤼타이메스트라에 의해서가 아니라 코로스에 의한 것이다. 코로스는 그리스 희곡의 한 가지 특징이긴 하지만 그리스 희곡의 전유물은 아닌 것 같다. 이건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서 주요 등장인물을 제외한 인물들이 담당하는 기능과 어느 정도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연출하는 부분들이 정형성을 띄고 있고, 역할이 다른 어떤 시대의 작품들보다 더 중요성을 띄고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카산드라는 미래를 내다 볼 수 있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녀는 예언자라기 보다는 예지자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죽음을 불사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순응한다. 그것은 아이스퀼로스가 숙명론자이고 운명극을 쓰는 자이어서인가? 그것이 고대 희랍인들의 사고방식이었을까?
그것보다는 이 희곡의 뿌리(줄거리)에 기인하는 것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녀는 예언의 힘을 아폴론에게 부여받았다. 하지만 아폴론의 아이를 가지기를 거부했기에 그녀의 능력은 아무 소용없는 재주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과 아가멤논의 죽음을 알 수 있었지만 피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1부에서 만들어지는 클뤼타이메스트라라는 인물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정부 아이기스토스와의 결합을 위해서 아가멤논을 죽인 것이 아니다. 이 희곡의 대화 속에는 그런 말들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녀는 다만 자신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쳐 죽음에 이르게 한(실제 그녀는 죽지 않았다) 것에 원망을 품은 것이다. 그런데 2부를 읽으면 그녀는 자신의 딸 엘렉트라와 오레스테이아를 추방해서 빈곤에 허덕이게 만든다. 모성애를 가진 인물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2부의 클뤼타이메스트라와 지극한 모성애가 불러오는 비행의 여주인공인 1부의 클뤼타이메스트라는 전혀 다른 인물로 보인다. 이것은 아이스퀼로스의 실수인가? 아니면 단순히 1부에 나타난 클뤼타이메스트라는 허영 그리고 자신마저 속이는 거짓말장이란 말인가?
이제 2부 코에포로이로 넘어간다. 아들 오레스테스가 드디어 등장한다. 그는 별 다른 주저없이 어머니를 죽인다. 이 충격적인 장면은 아이스퀼로스의 사상을 대변한다. 그는 부권중심 사회을 2부와 3부에서 적극적으로 옹호하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독서가 조금씩 고통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작가에게 공감할 수 없는 것은 이런 이유일 것이다. 작가와 독자가 사고나 가치관이 다른 것은 몰입하는 데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가 설득하는 방법, 혹은 형식에만 호감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가 기원전의 그리스인이고 2000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의 독자가 읽는 시대적 차이 때문에 일어날 문제도 조금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그의 사상이 어떤 방향으로 하나의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일종의 폭력으로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아이스퀼로스는 에우리피데스나 소포클레스에 비하면 영 호감이 가지 않는다. 만약 이 작품의 주인공이 오레스테스가 아니라 엘렉트라였다면 정신분석적으로나 품격적으로나 더 훌륭한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다시 2부로 돌아간다. 이 작품은 후에 세익스피어의 위대한 희곡 햄릿의 원형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두 작품 다 비극이다. 간부들을 죽인다. 그리고 그 간부는 자신의 삼촌이다. 주인공은 모두 왕의 자식이다.
하지만 햄릿의 비극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햄릿에게는 살인을 저지르기 전 내적 갈등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실제 사건이 일어난 후의 일보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일들이 훨씬 흥미롭다.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라는 말을 포함해서
그리고 또 커다란 차이가 있다. 오레스테스는 어머니를 죽인 결과에 대한 심판을 받고,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입증받는다! 어머니를 죽여도 되는 사회에서 그는 살고 있다! 햄릿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증오로 갈등한다. 돌아버릴 것만 같은 내적갈등에 시달려서 처절하게 몸부림을 치다가 결국 돌아버린다. 약혼자 오필리어도 덩달아 돌아버린다. 집안을 온통 피바다로 만든 후 주인공 햄릿마저 죽어야지 이 비극은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