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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
알베르토 모라비아 지음, 이현경 옮김 / 열림원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권태는 수동의 형태를 가진다. 이상하게도 자발적이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권태 또한 실세계에서는 존재가능하다. 그래서 인간은 기이한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권태는 절대로 불행의 요인만은 아니며 어떤 부분 가진 자들만이 소유하는 행복의 하나의 형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권태가 소설 전부를 지탱할 수 있는 대주제는 될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사실 모라비아도 제목만 권태라고 붙인 것이지, 전반적인 관념이 권태로 뒤덮인 소설을 쓴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인간은 권태, 슬픔, 애상감을 스스로 견디어 내는 방법을 터득해 가고 있으니, 이런 일들은 더이상 사건화할 문제는 아닐 것 같다. 아니, 적어도 소설화하기는 힘든 테마다.
어쩌면 앞으로의 소설은 정신분석의 영역을 넘어서버리는 소설만이 존재가치가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기존의 이론으로 분석불가능한 소설이 등장하면 정신분석학자들은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낼 것이다.
거짓말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수단이다.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자주 거짓말을 한다. 아니, 사랑하는 연인들은 자주 상대방에게 거짓말을 한다. 나쁜 것은 거짓말을 하는 행위나, 거짓말 자체가 아니다. 일정 수준의 진실이 담겨 있는 거짓말을 할 때 인간은 좌절하는지도 모르겠다. 실세계에서 대화는 더이상 소통의 의미로 다가서지 못한다. 소설가가 고민하는 것은 그 사실을 독자에게 알리는 방식이고, 불가능한 현실에서 인물의 내면을 끄집어내는 일이다. 이런 고민은 점점 가속화되어가고 있다. 19세기와 20세기의 일상의 차이에 비해 20세기와 21세기의 차이는 더욱 커 보인다.
지금 우리 시대는 (아직도, 라고 말해도 좋다면) 철기시대다. 하지만 디지털 혁명의 시대라고 해도 말하는 것이 더 의미는 가까워 보인다. 90년대 이후 확실히 한국인은 어느 나라보다 과학기술에 의존한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거기 반해서, 드라마나 영화, 소설은 예전 문학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인)문학의 위기이기도 하며, 기회이기도 하다. 양적, 숫적으로 늘어난 인간관계에 비해 질적으로는 한없이 축소되어가는 한국인/세계인의 일상사, 사회, 문화를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지 참으로 기대가 된다. 항상 문학은 사회가 한동안 변화한 후에 그림이 그려진다. 사건을 예언한 작가는 있지만, 동시대 문화를 동일한 시기에 형상화한 작가는 없는 것이다. 아무도, 누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