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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자들 1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32
알레산드로 만초니 지음, 김효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선과 악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서사를 진행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다. 돈 아본디오 신부는 귀족의 위협을 받고 결혼식 주례를 서지 않겠다고 도망다닌다. 이것은 악인의 모습이 아니다. 그런데 만초니는 설득력을 대해 주기 위해서 아본디오의 비열한 면들을 하나씩 추가시켜 놓는다. 게다가 훌륭한 신부인 크리스토포로 수사와 대비시킨다. 크리스토포로는 불의에 거세게 저항하는 진짜 신부로 그려내는 것이다. 크리스토포로의 행위는 이율배반적이고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 수 없는 인물로 처음에 제시된다. 누구보다 속물적인 인간이었고, 살인자였던 그가 개심을 하고 성인의 모습으로 변모되었을 때 사건은 시작되는 것이다.
아래 부분은 이 크리스토포로의 숭고한 선에의 열망을 그리는데, 이 수도사의 인물은 전반부에 묘사된 인물의 특성 중 한가지가 부각되면서 놀라운 아이러니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돈 로드리고가 몸을 움직이자, 우리의 수사는 그 앞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존경심을 잃지 않았다. 마치 애원하려는 듯 한순간이라도 그를 제지하려는 듯 두 손을 올리고 또다시 대답했다. “그녀가 나를 압박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당신만큼은 아닙니다. 두 영혼 모두 내 피보다 더 나를 압박합니다. 돈 로드리고! 난 당신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심을 다해 기도를 할 것입니다. 안 된다고 하지 마십시오. 불쌍하고 무고한 여인에게 고통과 공포를 주지 마십시오. 당신의 한마디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돈 로드리고가 말했다. “당신은 내가 그 여인을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으니, 그 여인이 신부님께 많은 근심을 안겨 드리니......”
“그렇다면?” 크리스토포로 신부가 초조하게 말을 받았다. 그러나 돈 로드리고의 태도와 몸짓은 그가 하고 싶은 말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내게 와서 내 보호를 받으라고 그녀에게 충고하시죠. 아무것도 부족할 것이 없고, 또 누구도 감히 그녀를 불안하게 하지 못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 기사는 아니죠.”
그와 같은 제안에 그때까지 억눌렀던 수사의 분노가 폭발했다. 인내하면서 신중히 제안했던 그 좋은 계획들이 모두 허사가 되었다. 노인은 다른 사람으로 돌변했다. 그때 크리스토포로 수사는 정말 두 사람 몫을 했다. “당신의 보호라니!” 수사는 뒤로 두 걸음 물러서서 오른쪽 다리에 힘을 주어 거칠게 서고, 오른손은 허리에 짚으면서, 그리고 왼손 집게손가락을 곧게 뻗어 돈 로드리고를 향해 들면서, 또한 불꽃같은 눈으로 그의 얼굴을 꿰뚫어보면서 소리쳤다. “당신의 보호라니! 내게 그렇게 말하고, 그런 제안을 한 게 더 낫군. 당신은 도를 지나쳤소. 난 더 이상 당신이 두렵지 않아.”
예전에 나는 이 작품 약혼자들의 초간본 번역의 앞부분을 잠깐 읽은 적이 있다. 문장에 세련된 맛은 덜하지만, 서사를 진행시키는 힘은 더 강렬했다는 기억이 남아 있다. 수정을 하면 할수록, 문학적인 맛은 더해지지만, 일반 독자와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된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