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대학의 운동권에 유독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부류들에는 어떤 특징이 있었다.

주로 정외과, 사학과, 철학과, 사회학과 학생들이 주동을 한다면 그 뒤로 국문과를 위시한 탈춤, 판소리 패거리들이 따라다니는 형국이었달까

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상경계열이나 자연과학계열에서의 참여율은 그닥 높지 않았던 것 같다.

 

학생운동을 주동하는 쪽에서는 도서관에서 파묻혀 사는 학생들을 향해 '시대와 민족을 외면하고 개인적 영달을 지향하는 소시민적 반동'이라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러한 전공별 행태가 갈리는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자연과학의 발전사를 돌이켜보면 시대마다 최첨단의 최고 이론이 지배하고 있었지만, 그 어떤 이론도 불완전했기에 후속하는 새로운 이론에 의해 대체되거나 폐기되어 왔음이 증명되었다. 만물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었던 무결점의 뉴턴 물리학도 결국에는 근사치에 불과함이 드러났으며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 밀려났음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 어떤 이론도 그 시대의 불완전한 관찰에 근거한 최선의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는 상대주의가 모든 과학자들을 어떤 절대주의로부터 탈피하게 만든 것이다.

 

이는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엄밀한 수치적 증명과 결과를 생명으로 하는 경제, 경영 분야에도 적용되어 그 어떤 경제 이론도 완전할 수 없으며 현실에 대한 불완전한 설명은 보다 설명력 있는 더 나은 이론에 의하여 대체된다는 상대론적 사고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런데,

역사학이나 정치철학, 사회학 분야에선 어떤 특정 이론이 힘을 얻으면 여간 해서는 그 권좌를 내주지 않는 것 같은데,

인류의 역사에는 ideal type(이상형) 혹은 prototype(원형) 같은 이상향이 존재하며 그것을 달성하는 것만이 인류의 지상목표여야 한다는 어떤 절대적 당위론이 그 배경에 깔려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한 이상향은 많은 젊은이들을 매혹시켰는데 그들이 주로 정외과, 사학과, 철학과, 사회학과 같은 전공의 학생들의 성향에 딱 들어맞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선 듣기엔 얼마나 멋진 말인가? 만민이 평등하게 잘사는 낙원같은 사회...

 

그에 비하여 자연과학이나 경영경제 분야는 그 어떤 이론도 완전할 수 없고 잠정적 추정에 불과하다는 상대주의 내지는,

모든 이론은 합리적 실험이나 역사적 검증을 거쳐서 보편타당성이 입증되어야 한다는 합리주의 내지 실증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에  검증되지 않은 개인적 견해에 바탕한 '이상론'은 발을 붙일 수가 없었다.

상경계열이나 이공계열 학생들은 그러한 합리성이나 상대주의를 더 많이 습득하고 있었기에 역사적 이상향을 지향하는 '목적론'에 쉽사리 빠져들지 않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어떤 주류의 이론도 절대적 지위를 차지할 수 없는 자연과학이나 경영경제 분야와는 달리문리 사회계열에서는 특정한 이론이 실증적인 결과로 인류사에서 검증되기 어렵기에, 보다 나은 진리에 의해 폐기되는 일 없이, 여전히 매력있는 이론으로 살아남아서 교과서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칼 포퍼는 소위 진보주의 역사관이나 이상주의 역사관에 대하여 "반증가능성의 부재"라는 치명적인 허점을 파악하여 철저히 공격하였다.

 

마르크스로 대표되는 유토피아적 사회철학이 그렇게 매력 있게 느껴지는 건 자연과학이나 경영경제 분야에서처럼 실증적 결과로 검증되지 않기 때문이다.(구소련과 동구권 공산주의의 붕괴로 역사적 검증이 이루어진 것 같기도 한데, 아직도 많은 사람이 중국이나 북한을 마지막 모델로 삼으며 생명을 이어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젊은 날 한때에 최고의 이상을 향해 열정을 바치는 건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이해가 간다마는, 지천명을 지나서까지도 그러한 절대주의적 사고에 매여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들을 보면 연민마저 생긴다.

(그들도 이 모든 사정을 알 것이다. 다만 그 '진영'에 이미 올인해버린 인생이라 일가족의 생계가 딸린 마당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플라톤에서부터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서구 사상사에서 면면히 내려온 전체주의적 유토피아 사상의 허구성을 철저히 까발리고 비판한다. 역사적 검증 없이 인류의 사상사를 유혹하고 왜곡해 온 진보주의 역사관의 허구성을 만천하에 고발하는 것이다. 


서구에서는 이미 한물간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판을 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한국은 사상사면에서 서구에 1백년 이상 뒤처져 있다고 보아야 한다

, 무지한 백성들이여. 아직도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를 꿈꾸는가.

이 책을 읽고 부디 그 단순무지한 꿈을 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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