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각의 번역 - 요리가 주는 영감에 관하여
도리스 되리 지음, 함미라 옮김 / 샘터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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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위에 놓인 요리를 보며 내 혀가 움직여 보여주는 세상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의 요리는 소고기와 새우를 합한 일명 비프감바스였다. 며칠 전 후배가 추석 선물이라고 보낸 새우를 다양한 형태로 요리했다. 소금구이, 새우탕, 새우튀김, 심지어 새우장까지.

마지막 남은 십여마리의 새우로 무엇을 해 먹을까 조언을 구하니 감바스(새우)를 하란다. 냉장고에 잠자던 소고기를 꺼내 나만의 감바스 비프감바스를 했다.

 

사람의 손이 가장 정직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곳은 바로 부엌. 요리할 때다. 사람의 머리와 오감의 감각기관이 가장 창의적으로 변화할 때도 역시 요리할 때다. <미각의 번역>이란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 도리스되리는 요리가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세상을 일반인이 알기 쉽도록 번역해주었다.

 

-부엌은 문명의 길을 탐구할 수 있는 소우주이다. 요리는 자연의 쇠퇴를 막고 그것을 변화시킨다. 신화와 의식과 문화의 관계처럼. 부엌은 한 사회의 문화와 구조를 읽어낼 수 있는 곳이다 .- (44-45)

 

인간이 사는 주거공간에서 인간 문명의 발전을 가장 집약적으로 표현한 곳이 바로 부엌이라는 말이겠다. 먹고 사는 일, 이 단순한 원리를 벗어나는 샘명체가 어디에 있는가. 게다가 날 것이라는 먹거리를 진화시켜 요리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문명을 만들어온 인간에게 찬사를 보낸다.

 

작가가 말한 요리에 대한 이미지는 놀랍다. 양배추의 단면을 보면서 생물의 뇌를 생각하다니!

양배추쌈이 몸에 좋다고 수다를 떠는 지인들의 방에서 퀴즈를 냈다.

양배추를 보면 무엇이 떠 오를까요? 맞추는 사람에게 추석 선물로 커피 한잔.”

 

스페인에서 한달살기를 실천하고 돌아온 아들이 말했던 스페인 볶음밥 ‘ Paella 파에야

상그리아(스테핑 칵테일)만큼이나 즐겨 주문하는 대표음식이란다. 코로나가 풀리면 가장 먼저 가고 싶은 곳이 유렵, 그중에서 스페인과 로마다. 세계적인 성당이 가득한 곳이어서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을 때 꼭 가보고 싶은데, 각 지역마다 현지인이 추천하는 요리를 먹고 여행기를 남기고 싶다. 유럽에서 타인에게 관대한 나라, 스페인에서 아들과 함께 파에야를 먹기를!

 

-양배추만큼 독일적인 것은 없을 거다. 아주 오래전 겨울만 되면 집집마다 양배추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양배추로 만든 요리는 내가 좋아하던 양배추롤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양배추롤이 식탁에 오르면, 먼 데서도 양배추롤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냄새는 독일에서 사라졌다. -(92)

 

양배추를 보면서 중국의 배추, 한국의 김치를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작가가 옛 시절에 먹었던 양배추요리가 발효과정을 거친 음식이어서 그럴 것이다. 한국에선 김치 없는 삶은 있을 수 없다고 믿는 것처럼, 독일에서 가장 독일다운 요리가 양배추란다. 다행히도 작가가 바라본 한국의 김치는 그 무엇도 넘볼 수 없는 탁월한 음식이라고 극찬했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양배추가 대중화되어 다양한 요리로 변신한다. 비록 독일식 요리로 사랑받진 못할지라도, 한가지는 배웠다. “, 양배추가 가장 독일적인 재료구나!”

소제목에 달린 놀이하는 인간, 놀이하는 문어가 눈길을 끌었다. 문어가 놀이를 한다고? 어부이셨던 아버지 덕분에 문어는 우리집 식탁의 단골손님이었는데, 놀이를 할 수 있다고?

 

오징어과의 한 종류로 지능이 가장 뛰어난 문어. 영어로 Octopus를 말하면서 다리 숫자가 왜 8개인지를 알려주면 학생들은 아하! 라고 답한다. 다리 한 개가 긴 이유와 몸 색깔이 바뀔 수 있음을 알려주면 더욱더 신기해한다. 이 책에서 색다른 사실들을 배워가서 또 학생들에게 말해줘야지. 아마도 서로 문어가 되고 싶다고 말할지도 몰라.

 

문어는 심리적 상태에 따라 몸 색깔을 바꾼다. 기분이 안 좋을 때, 그리고 죽기 직전 매우 창백한 빛깔을 띈다. 반대로 기분이 좋거나 신이 날 땐 주위 배경과 같은 몸의 색깔과 문양을 바꾼다. 문어는 지루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루하게 있느니 어렵사리 돌려 닫은 병 뚜껑을 능숙한 솜씨로 열며 노는 걸 더 좋아한다. 그 솜씨가 얼마나 능숙한지 주방 보조원으로 두고 싶을 정도다. 사람을 알아보기도 하고, 신이 나면 친구의 얼굴에 물을 분사하기도 한다. - (139)

 

 

오후 2, 왠지 몸이 나른하고 눈이 살짝 감긴다.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까지 커피를 한잔도 안 마셨네. 드립커피를 내리면서 이 물 한잔에 의지하는 내 감각에 불신이 생긴다. 하지만 어쩌랴. 그 감각이 원하는 것을. 커피의 종류도 가지지다. 원액인 에스프레소(도저히 마실 맛이 안난다)부터 카푸치노, 아이스커피, 커피라떼, 아메리카노 등. 난 오로지 아메리카노만 마신다. 미국식이 좋아서가 아니다. 그냥 물과 커피 몇 알이면 되는 편리함 때문이다. 커피는 맛으로서가 아니라 나의 감각을 깨워주는 주범, 카페인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커피가 몸에 좋다는 학설까지 나와서 대중없이 자주 마신다. 작가는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가 광고하는 캡슐 커피머신까지 가지고 있다는데 난 그냥 편의점 커피를 마신다.

 

요리의 세상을 구경하다면 저절로 식탁예절, 음식을 대하는 예절에 민감해지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작가의 제안처럼 아주 약간의 우아함을 식탁 위에 놓을 수만 있다면, 요리세상으로의 여정은 늘 환대받을 것이다.

 

거리낌없이 마구 음식을 먹거나, 접시 앞에 팔을 올려놓고 있거나, 주먹 쥐듯 포크를 잡거나, 음식 바로 곁에 휴대폰을 두는 걸 보면 점점 더 격하게 반응한다. 나를 불쾌하게 하는 건 음식과 음식을 먹고 마시는 과정에 대한 경시이다.- (296)

 

이제 혼자 식사하는 것에도 지루함과는 전혀 다른 가능성이 열렸다. 한국에선 젊은이들이 식탁에서 혼자 밥을 먹으면서 영상으로 내보내는 것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기발하지 않은가? 이 트렌드를 먹방이라고 한다. 먹방에선 식탁예절은 완전히 포기한다.- (299)

 

- 우리가 뭔가 아주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자기 앞에 놓인 그릇 위에 음식이 담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과 동물, 식물의 수고와 협력, 희생이 있었는지 식사때마다 들려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상과 단절되어 뿔뿔이 흩어지게 될거라고 나는 믿는다. 내 안에 있는 아주 약간의 우아함을 찾아 꺼내어 놓고.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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