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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당신에게
김수현 지음, Sky Kim 그림 / 샘터사 / 2021년 8월
평점 :
김수현 작가의 <아름다운 당신에게>를 첫 장을 펼치니 수필영역의 최고명사 ’피천득‘작가가 김수현의 첫 수필집 <세월>에 써준 추천의 글이 보였다.
’좋은 수필은 독자에게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수필은 서정적 에세이다. 섬세하고 재치있고 재미있고 아름다워야 한다. 우리는 김수현에게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첫 수필집 이후 20년만에 다시 쓴 수필집 <아름다운 당신에게>에게도 이 추천사는 유효하리라는 믿음이 앞섰다. 아니 오히려 더 영글대로 영글어진 가을의 결실을 듬뿍 맛볼 수 있을거라 믿었다. 첫 수필 <세월>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주 내용이었던 아버지와의 추억을 이 책에서 다시 들을 수 있었다.
동시에 10여년 전 돌아가신 나의 친정아버지를 회상하며 사진 한 장을 꺼내보는 시간이 함께 있었다. 또 작가의 말한 삶의 키워드인 ’빛‘이 보여주는 세상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상심한 이들뿐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잔잔한 빛의 번짐이 느껴진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임금님이 거니셨던 궁을 지키고 관리하는 공무원이었다. 어린시절 아버지를 따라 자주 궁에 갔다. 아버지의 투박한 손을 잡았다. 뜰을 거닐던 임금님도 공주님도 부럽지 않았다. -(p.33)
작가가 그리워하는 아버지는 투박함이 가득한 듯 했다. 예전의 가부장적 아버지들이 가진 대부분의 모습처럼, 권위, 순서, 명령, 질서를 중시하는 아버지 상이었다. 그런데 그 속에는 묵직하고 고소한 냄새가 있었다. 작가가 귀가길 아버지의 손을 바라보고 마당에 있던 강아지가 작가를 보며 입맛을 다시는 냄새가 있었다.
생각해보니, 내 어릴적 아버지도 그랬다. 거의 말이 없었던 아버지가 어느 겨울날, 군고구마를 사 가지고 들어오셔서 따로국밥의 우리 오형제를 한 방에 둘러앉게 만들었었다. 하얀이 드러내며 씩 한번 웃으시며, “누나 형 먼저 먹고..”라는 단언이 있었어도 아무도 거부하지 않았다.
-삼십여 년간 함께 아이들을 키웠고, 함께 어르신들을 모셨던 이웃에 대한 정으로 철거현장의 먼지와 소음을 참는다. 사람 없는 건물은 으스스한 기운이 감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람이라고 했던가. 환하게 빛났던 것은 이웃 덕이었음을, 그들이 떠난 후 알게 되었다. -(p.51)
며칠 전 딸과 함께 바다로 경계한 나의 어릴 적 동네로 들어갔다. 이미 3년 전에 그곳의 마을은 다 없어지고 빈 공터에 시에서 주관하는 주차장과 쪽밭이 있는 줄을 알면서도 가고 싶었다. 지금의 내 발걸음으로 스무남짓 밖에 되지 않은 골목길인데 어릴 적 기억에는 길고 긴 터널처럼 길었고, 온 동네 사람들의 희노애락은 그 터널 위에 뿌려졌었다.
골목 가장 앞머리에 있던 동네수퍼 반장할아버지, 마당에 갓 잡아온 생선을 펼쳤던 아버지, 나무공장의 성실한 펜잡아 고아저씨, 삼립 빵 수레를 끌던 최아저씨, 동네의 산신령 이 할머니 등의 모습이 스쳤다. 벌써 사십여년이 지났으니 그들이 그곳에 있을리 만무하건만, 아직도 그들의 모습은 골목을 채웠다.
-아버지 가신 지 십 년, 엄마 가신 지 오 년인데 가신 분들의 빈자리는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비어있는 자리를 바라보지 않고 살아갈 뿐이고, 명절이면 바라보게 된다. 꿈에 아버지에게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낡은 구형 휴대론을 들고 계셨다. 왜 진작 아버지 전화기를 안 바꾸어 드렸을까 울음이 나왔다. 하루하루 시간은 흐르고, 시간여행은 재미있는 열차를 타고간다.-(p.78)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후 아버지의 전화번호를 지우지 못했다. 한 2년 가까이 가끔씩 전화를 걸어보았다.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았다. 어느날 모 남자의 소리에 놀라, 전화를 잘못 걸었다고 사과하고 끊었다. 그 전화번호를 지워내면서 차가운 바람이 드는 가슴 한쪽을 쓰다듬었다. 진짜 이별이구나. 시간은 그때도 흘렀고 지금도 흐른다. 그때의 슬픈 여행이 기쁜 여행으로 바꿔지지 않는다. 그런가보다. 이별에는 늘 슬픈 시간여행만 존재하는가 보다.
앞만 보고 왔던 지난 시간들. 글을 쓴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 나를 바라보는 일, 주변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참으로 사랑했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못하면 후회하는 날이 오는 것처럼, 감사하다는 표현을 하지 못하면 감사가 날아가버릴 것만 같아서 글을 쓴다. 글을 쓴다는 것 소중한 것을 정갈하게 담아두는 과정이다. -(p.144)
얼마나 다행인가 싶을 때가 있다. 글로 나를 대신할 수 있음이. 지금이야 조금 덜 하지만, 말로서 감정을 표현하는데 익숙하지 못했던 지난 시간들이 아깝다. 좀 더 일찍, 말의 유용성에 기대어 솔직했더라면, 소중한 것들과 사람을 더 많이 지킬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지금은 글로나마, 부끄러운 감정을 표현하는 시간이 늘었다. 그래서 외로움과 괴로움이 줄었다. 가까이는 가족부터 친구, 지인, 단 한번 만난 사람에게도 따뜻한 말과 글을 전하려고 노력한다.
김수현 작가는 <아름다운 당신에게>의 Part6에 첫 수필집 <세월>에 썼던 친정얘기를 썼다. 지금은 절판이 된 책이어서 구입하지 못하지만 이 짧은 몇편의 글로나마, 피천득 선생님이 추천사를 써준 이유가 있음을 알았다. <세월>에서 작가가 표현한 서정적이고 섬세한 글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갈무리로 쓴 ’친정가는 길‘을 읽으면서 20여년 만에 친정엄마가 있는 동네로 다시 돌아온 나를 본다. 학생때의 내가 세상에 나가서 또 하나의 가족으로 돌아왔다. 내가 할머니 뒤를 따라다녔던 것처럼, 지금의 내 딸은 친정엄마의 친구가 되었다. 친정가는 길은 굽이굽이 돌아 아무에게도 생채기를 내지 않고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처럼, 내 삶에 안옥하고 포근한 길이다.
<아름다운 당신에게>는 책을 읽는 독자에게 더 아름다운 삶의 근원을 말한다. 멀리 있지 않고 내 안에 내 주변에 행복이 있음을 전한다. 결실을 거두고 싶은 이 가을, 꼭 읽어보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