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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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은 해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해언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레몬은 시간의 흐름과 시점 전환에 따라 총 8가지 이야기로 구성된다. 해언이 죽은 2002년부터 2016년까지 다언, 상희, 태림의 시점이 번갈아 등장하며 해언의 죽음 이후를 이야기한다. 소설의 모든 이야기는 해언의 죽음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해언은 이 소설에서 삭제된 존재이다. 모두가 해언의 죽음에 관심을 가졌지만 아무도 해언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 아이들은 해언이 어떻게 죽었는지, 누가 해언을 죽였는지에 대해 설명하기 바빴고 다언과 엄마는 해언을 애도 할 수 없었다. 애도는 죽음에 대한 인정에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언의 죽음 이후 계속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은 해언 이외의 사람들이기에 작가는 해언이 아닌 사람들로 하여금 해언의 죽음에 대해 설명하도록 한다.

  해언의 죽음은 해언의 주변부에 존재하던 모든 삶을 파괴시켰다. 동생 다언은 해언의 사진을 들고 가 성형을 하고 엄마는 해언을 대신할 새로운 아이 혜은을 기른다. 경찰에 의해 용의자로 지목된 만우도, 해언을 차에 태웠던 정준 그리고 그의 여자 친구 태림도 자신에게 일어난 불행과 해언의 죽음을 끝없이 연관시킨다. 해언의 죽음은 주변의 삶을 모두 파괴해버린다. 소설의 초점 화자로 등장하는 다언, 상희, 태림은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태언의 죽음을 회상하고 그 이후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물 개인의 입장에서 서술된다는 점에서 이것은 내적 초점화에 해당한다. 다언, 상희, 태림 각자가 보고 느낀 것들이 모여 해언의 죽음이라는 하나의 사건 이해로 통합된다는 점에서 이 소설에서는 변동 초점화가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으며 이들이 해언의 죽음이라는 하나의 사건에 대해 서술하기 때문에 복수 초점화가 나타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작가는 해언을 제외한 이들의 서술에 주목하는 다성적 시점을 통해 해언의 죽음에서 해언이 빠져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동생 다언이 언니에 대해 서술하는 부분이 등장하지만 다언 자신의 입장에서 설명하기 때문에 해언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은 해언의 죽음으로 인해 조금씩 어긋난 삶을 살게 되었고 그것이 죽음때문이라는 것은 알지만 정작 죽음의 당사자인 해언을 잊고 있다.

  태림이 박사와 상담하는 부분에서 그녀는 박사에게 <애도,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해언을 애도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저 신을 믿고, 신에게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반면 만우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해언을 애도할 수 있게 된 다언은 신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장편 개작 이전 소설의 제목인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와 연결된다. 다언은 상희와의 대화 속에서 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언은 인간이 삶에서 겪는 불행, 재앙을 비롯한 모든 것은 신의 섭리가 아니라 신의 무지라고 말한다. 인간이 신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신은 삶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신에게 의지하고 신을 믿는 태림은 끝까지 해언을 애도하지 못한다. 한편 신을 믿지 않는 다언은 이 모든 것을 신의 섭리라고 이야기 하지 않고 신의 무지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녀는 신도 알지 못하는, 개인의 삶을 알기 위해 힘쓴다. 다언은 유력한 용의자라는 이름에 가려졌던 한만우 개인의 삶에 한 발짝 다가서고 그의 삶을, 그가 살아온 삶의 흔적과 경험을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마침내 그의 언니 해언의 죽음을 애도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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