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키핑
메릴린 로빈슨 지음, 유향란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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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문학상의 제3회 수상자인 메릴린 로빈슨. [하우스 키핑]은 그녀의 처녀작이자 대표작이다. 저자가 집필한 순서대로 이 책을 처음 읽고 [길리아드]를 접했다면 느낌이 어땠을까. 내가 가장 먼저 접한 메릴린 로빈슨의 작품은 그녀의 두번째 소설 [길리아드]였다. [길리아드]를 읽으면서 이 작가는 참 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하는구나, 가족에 대한, 그리고 가족을 둘러싼 공동체의 일상을 그리며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구나 생각했었는데 첫 소설 [하우스키핑]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리 속을 알 수 없을 것 같은 양파같은 사람일지라도 알아가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면 먼저 그가 살아왔던 환경, 곧 그의 가족에 대해 알아봐야 할 것이다.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지금껏 직간접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친 그의 부모님 뿐 아니라 부모님의 부모님까지 알 수 있다면 그가 가면으로 숨기는 있는 속모습까지도 꿰뚫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3이라는 숫자는 가족이라는 개념과 특별한 관계를 이룬다. 사대까지 동시대를 살아갈 수도 있지만 삼대가 더 일반적이고 일상적이니까. 메릴린 로빈슨은 소설속에서 가족에 대해 다루며 삼대에 걸친 가족사를 두 소설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Housekeeping.. 살림이라는 뜻의 영어단어인데 이 소설의 주제와는 동떨어진 느낌이다. House와 Keeping을 따로 생각해서 집, 곧 가족을 지켜낸다는 의미가 더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소설의 시작은 주인공 루스의 외할머니의 집이 지어진 배경과 외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집이라는 공간을 가족이 보금자리로 삼고 살아갔지만 외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한때 끈끈하게 묶여있는듯 했던 남겨진 가족들이 하나둘 둥지를 떠나고 결국 집과 함께 가족이 해체되는, 집에서 시작하고 집으로 끝나는 이야기이다. 호수 위 다리를 달리던 기차의 탈선으로 죽음을 맞이한 외할아버지의 이야기와 루스와 실비 이모가 마을에서 다른 세상으로 다리를 통해 나아가는 부분이 비슷하게 대비를 이루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난 이 소설 속에서 (어쩌면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초점이 맞지 않는듯하지만) '상실'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길리아드]의 키워는 '용서') 우리는 때로 크고 중요한 것을 잃을수록 아무렇지 않은 척, 금방 극복한 척 하기 쉽다. 그 아픔이 너무나도 크기에 덮어버리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아픔을 방치한 채 더 열심히, 바쁘게 살아가곤 한다. 그러나 큰 상처일수록 제때 아파하고 제때 치료해야만 더 단단해질 수 있다. 그냥 방치한다면 기나긴 시간을 고통과 후유증으로 보낼 수 밖에 없다. 아픔과 슬픔을 가감없이 나눌 수 있기에 가족이고, 가족이기에 그래야만 한다는.. 가족의 의미에 대해 고찰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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