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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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인 주인공 가 무언가 쓰려고 할 때마다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가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하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주인공은 그것을 어릴 때 씐 혼의 흔적으로 여기며 이 목소리 때문에 실제로 아무것도 쓰지 못한다. 이것이 원한이고 악의라고, 주인공은 생각했다. 나는 귀신에 씐 적이 없는데 주인공이 듣는 목소리가 익숙했다. 한때 내가 나에게 하던 말과 놀랍도록 닮아있었다.

 

주인공이 진에게 대불호텔이라는 곳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인천에 가봐야겠다고 할 때에도 그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선택은 실수라고, 거기에 가면 소중한 사람을 잃고 말 거라고. 그러나 주인공은 과감히 인천으로 출발한다. 대불호텔 터를 목표로 출발한 여정은 진의 외할머니까지 흘러간다. 주인공은 박지운으로부터 고연주, 지영현, 뢰이한, 셜리 잭슨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 넷의 이야기에도 원한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악의로 가득한 이 목소리는 대불호텔을 떠나고 싶어 하는 연주의 발을 묶고, 대불호텔에 남고 싶어 하는 영현의 등을 떠민다. 사람들이 뢰이한에게 돌을 던지게 하고, 셜리를 날마다 메말라가게 한다. 날이 갈수록 넷은 서로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불신하고, 미워하고, 헐뜯는다. 대불호텔에 무언가 있는 것 같다고 그들은 입을 모았지만,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이 사람들이 말하는 유령은 각자 오랫동안 속에 지니고 있던 무언가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대불호텔은 사람들을 떨어뜨려놓아요. 하나씩, 하나씩, 찢어놓죠. 현실을 알려주는 거예요.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을 드러내는 거예요. 혼자 남게 되는 것. 나의 이야기를 오직 나에게만 하게 되는 것. (207)

 


무언가에 간절해지면, 이상하게도 그 간절함이 실패하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함께 자라난다. 연주는 미국으로 떠나길 간절히 원했지만, 그만큼 떠나지 못할까봐 두려워했다. 영현은 호텔에 남아 평생 이렇게 살길 바랐지만, 동시에 쫓겨날 날을 두려워했다. 공포는 모이고 모여 하나의 실체가 되었고, 연주와 영현을 쫓아다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절대 얻지 못할 거라고 속삭였다. 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원하는 게 있으면 스스로에 대한 악의는 반드시 따라온다.

 

한번은 친구 C와 통화를 하다가,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C에게 지금부터 하고 싶은 걸 하나둘씩 해보면서 살면 어떠냐고 했다. C, 근데 난 너무 늦었어, 라고 답했다. 해외에 나가서 공부하는 것도,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지금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나는 아니야, 그렇지 않아, 우린 고작 스물몇 살인걸, 하며 C를 설득했지만 C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또 한번은 친구 J가 자기는 사랑받을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내가 어벙한 채로, 지금 내가 널 사랑하고 있는걸, 넌 아주 사랑스러워, 대답하자 J는 지금이야 그렇지만 나중엔 지쳐 그만둘 거라고 말했다. J는 그 말을 실현시키고야 말겠다는 듯 점차 내 마음을 외면하고 부정했다. 계속해서 날 밀어내는 J에게 힘들다고 말하자 J, 그것 봐, 난 사랑받을 수 없다니까, 못을 박고 떠났다.

 

뢰이한을 한때 너무 사랑해서 미워하는 박지운처럼, 진을 진심으로 좋아해서 마음을 부정하던 주인공처럼, 사람 마음엔 항상 사랑과 증오가 공존한다. 둘 중 무엇에 귀 기울일지는 본인의 몫이다. 대불호텔에는 유령이 있다고, 원한의 혼이 산다고 말하지만, 사실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 사람 중에서도 자기 자신이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품은 원한과 악의를 해결하지 못하면 영영 스스로 걸어놓은 저주 아래서 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참된 공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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