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느 귀용의 요한계시록 - 보다 심오한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한 설명과 성찰
잔느 귀용 지음, 임정아 옮김 / 순전한나드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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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잔느 귀용의 야고보서, 요한일서, 요한계시록 주석서이다.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이다. 주님과 주님의 말씀 앞에서 개인의 영혼을 성찰하며,

말씀 앞에서 자신을 교화하도록 체험적이고도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잔느 귀용의 책에는 어떤 현학적이거나 학문적인 체 하는 내용은 없다.

말씀 앞에 선 한 영혼이 생명의 양식을 먹는 과정이다.

따라서 차분한 마음으로 묵상하면서 읽을 책이다.

어떤 단편적인 지식이나 호기심을 채우려고 읽는다면 별 유익이 없을 것이다.

 

시간을 두고 묵상하면서 차분히 읽을 책이다.

현재의 나는 요한계시록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단계이므로,

이 책이 당장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던 이유이다.

다음 기회에 다시 만난다면 분명 다른 유익을 얻으리라고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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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 빼고 보는 요한계시록 - 다 비친 코드 해독하기
이남하 지음 / 대장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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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 요한계시록은 사이비와 이단의 전유물이 되었다. 교회는 요한계시록을 극성스럽고 난해하게 강해하여 성도들이 못알아듣거나 질리거나 비정상적으로 만들든지, 아니면 요한계시록을 전혀 설교하지도 읽지도 않든지 두 극단으로 치우치게 만들었다. 사탄의 전략은 주효했다. 신앙적으로 큰 유익이 되며, 문학적으로 탁월함의 극치인 요한계시록을 교회와 성도들에게 되돌려주도록 돕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요한계시록에 대한 거부감은 왜곡된 종말론에 대한 거부감에서 유래한다.

666, 휴거, 7년 대환란 등 세대주의 종말론이 만든 이 내용들은 요한계시록의 메시지가 아니다. 요한계시록의 주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광스러운 최후 승리이다. 이 주제에서 벗어난 시간에 대한 추측, 미래에 대한 예언 등은 모두 허황되며 유익하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성경적이지 않다.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요한계시록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막연한 미지의 동경이 있다. 어떤 사람은 요한계시록은 무시무시한 책으로 타부시 하기도 하고, 막연한 두려움이나 편견을 가질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요한계시록은 이단과 사이비의 온상이었다. 요한계시록을 다루는 것이 왠지 게름직하다. 저자도 종말론과 요한계시록의 문제에 대하여 오랜 고민을 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 열쇠를 정통 주류 해석과 레이 로빈슨이 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Ray F. Robbins, 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에서 찾았다고 하였다. 저자가 이 출처를 밝힌 것이 나는 참 기뻤다. 저자가 솔직했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얻은 유익을 독자와 나누고자 하는 진정성이 나에게 전해졌다.

 

요한계시록은 당시 로마제국이 황제숭배를 강요하던 상황에서 기독교인들에게 '비밀코드'를 사용하여 쓰여진 것이므로, 약간의 안내를 받으면 쉽게 이해하며 큰 은혜를 받을 수있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그래서 부제로 유머러스하게 <다 비친 코드>라고 한 것이다. 화제작 <다비친코드>를 패러디한데서 저자의 유머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2부로 이루어졌다. 1부에서는 요한계시록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빼내기, 2부에서는 요한계시록 내용 알아가기이다. 이남하의 특징답게 강해하듯이 구절구절을 풀이한 것이 아니라, 누구가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핵심주제를 따라서 이야기하듯이 서술하였다. 나는 이 책을 통하여 요한계시록 안에 담긴 주옥같은 보물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위로와 소망,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광스러운 최후 승리에 대한 감격과 통쾌함을 맛보았다.

 

누가 요한계시록을 두려움의 책이라고, 이단의 책이라고 각인시켰던가?

요한계시록의 교회의 보물이요, 희망과 위로가 충만한 교회의 책이다.

빼앗겼던 요한계시록을 다시 교회가 찾아온다면, 큰 유익과 능력을 얻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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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짜리 - 세상에서 가장 비싼 보물에 관한 연구, 수정증보판
이남하 지음 / 요단출판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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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하는 동생의 권유로 이남하의 <예수님 짜리>,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에베소서를 본문으로 이야기하듯이 풀어낸 것이었다.

에베소서 강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편안하게 풀어쓰는 인생이야기 같기도 하고 수필 같기도 했다. 편안하게 따라 읽으면서, 교회의 진면모를 보게 되고, 성도의 진면모를 발견하게 해주는 책이다. 성경적인 관점으로 보는 '교회란 무엇인가?' '성도란 누구인가?'하는 것을 발견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이야기꾼 이남하에 대하여 은근히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를 다시 만난 것은 <거품 빼고 보는 요한계시록ㅍ : <다 바친 코드> 해독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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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40일 묵상 여행
이필찬 지음 / 이레서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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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묵상할 수 있는 요한계시록 40일 묵상여행집이다.

이필찬은 무천년설의 입장에서 계시록이 가지고 있는 상징을 제대로 해석하고 제공하는 요한계시록 전문가이다.

 

원래 계시록은 낭독하고 회중이 듣도록 기록된 편지형식의 묵시록이다.

당시의 독자들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며 풍성한 그림언어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런 요한계시록을 현대적인 해석을 주입하고 가미하여, 당시 독자들이 이해한 것과는 전혀 다른 요한계시록을 만드는 것은 크나큰 문제이다.

 

이필찬의 이 책은 간결하고 정확한 안내를 해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인위적인 해석을 주입시키지 않았다.

저저 요한을 통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당시의 독자가 받았든 감동과 소망, 그리고 배교자들이나 신앙이 흔들리는 이들에게는 경고와 회개의 메시지를 그대로 잘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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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만 해도 열리는 요한계시록 - 극동방송 세미나 교재
김형종 지음 / 솔로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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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요한계시록의 큰 그림이 들어오기를 사모해왔다. 그 큰 그림을 여는데 도움이 되는 책 가운데 김형종의 <읽기만 해도 열리는 요한계시록>이다. 책과 함께 성경공부 교재가 있다. 놀랍게도 성경공부 교재, 즉 질문과 답과 간단한 설명만 보아도 요한계시록을 쉽게 읽을 수가 있다.

 

요한계시록이 시간 순서로 기록되었다는 편견이 잘못된 해석을 낳았다.

요한계시록은 시간 청사진(timetable)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다.

요한계시록은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예를 들면, 20장에 사탄을 무저갱에 가두기 위해서 '열쇠' '쇠사슬'등이 필요한데, 사탄은 육체를 가진 존재가 아니므로 이것들은 상징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의 구원사역으로 사탄을 완전히 결박했다는 뜻이지, 문자적인 뜻이 아니다.

 

요한계시록이 시간 순서가 아니라는 것의 예들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심판은 1) 계시록 11:15절에 일곱번째 나팔이 불고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 것으로 재림과 심판이 끝이 났다. 계시록은 점층과 심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것을 자세히 추가로 설명하고 있다. 영적인 의미와 사탄, 짐승, 거짓 선지자에 대한 심판을 상세히 추가로 설명하는 것이다. 2) 계시록 16장에서 일곱번째 대접을 쏟으므로 바벨론은 멸망했다. 그런데도 17장은 바벨론의 멸망 예고, 18장은 바벨론의 멸망을 다루는 것은 16장에 대한 최후 심판을 더 상세하게 독자들에게 17, 18장을 통하여 하나님의 준언한 심판과 교회의 승리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2. 계시록이 시간 순서가 아니라, 점층과 상세 설명의 과정으로 보아야 하는 두 번째 예는 7인봉 - 7나팔 - 7대접 심판이다. 이것은 각각의 심판이 아니라, 인봉은 심판에 대한 예고이며, 나팔은 심판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것이며, 7째 나팔을 불 때 이미 주님의 재림과 심판은 이루어진 것이다. 7대접 심판은 심판이 실행된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3.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이 시간 순서로 해석하면 문제가 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20장 '천년왕국'의 문제이다. 계시록 20장 '천년왕국'은 사이비 종말론과 이단의 온상이었으며, 2,000년 기독교 역사상 교단과 교회의 분열의 온상이었다. 김형종은 '천년왕국'이 지상에 도래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전천년설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본문의 천년왕국은 '지상'이 아니라 '천상'에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천년왕국'이라는 용어 자체가 이미 '지상의 천년왕국'을 염두한 잘못된 개념이라고 바르게 지적하고 있다.

 

계시록 20장이 지상의 천년왕국이 아니라 '천상의 천년왕국'이라는 것이 김형종이 제시하는 20장에 대한 해석의 열쇠이다. 계시록은 시간 순서로 해석하면 문제가 생긴다. 18장 바벨론 멸망, 19장 주님의 재림, 20장 천년왕국이 지상에 도래하는 시간적인 해석(전천년설의 입장)으로 본다면, 1) 주님이 재림하셨는데 어떻게 마귀가 역사하는가? 주님의 재림과 심판이 그토록 무력한 것인가? 2) 주님이 재림하셔서 이미 18장-19장에 악의 세력이 멸망하고, 새들이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을 다 먹는 심판을 했는데, 어떻게 '곡과 마곡의 전쟁'(겔38장을 인용)이 생길 수 있는가?

 

계20장에 대한 바른 해석은 시간 순서가 아니라, 순교자들에게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는 영광스러운 소망을 주는 '중간계시'로 보는 것이 옳다. 최후의 원수인 사망과 음부, 그리고 용(사탄)의 최후의 발악과 멸망을 확연히 보여주는 것이다. 

 

김형종의 해석 중에서 단 하나 아직도 충분히 받아들이고 설득되지 않는 부분은 계시록 7장에 나타난 144,000과 셀 수 없는 큰 무리에 대한 해석이다. 내 해석은 귀로 들을 때는(7:4) 구원받은 사람이 144,000명이라고 선언하고, 눈으로 보니(7:9), 셀 수 없는 큰 무리라고 했는데, 동일하게 '교회'를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그런데 김형종은 144,000명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십사만 사천이며,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이방인 중에서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숫자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144,000명은 유대인,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구원받은 이방인'으로 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히 납득되지 않는다. 

 

아무튼 간결하고 쉽게 요한계시록의 세계를 열어준 김형종 박사에게 경의와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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