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길기도 하고 비교적 오래전에 나온 작품들은 개인적으로 좀 재미가 없게 느껴져서 기피했었는데 패션은 하도 유명하고 취향 아닌 사람도 재미있게 읽었다는 후기가 많아서 읽기 시작했다. 특히 이 정도 장편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다는 자체에 신뢰가 갔다. 다이아포닉 심포니아는 시리즈의 2부라서 메인 커플 이야기 보다는 조연 커플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래서 이 시리즈가 더 인기 있지 않나 싶다. 압도적으로 인기가 많은 메인 커플의 본편 후 이야기도 살짝씩 보여주면서 또 다른 매력이 있는 조연들의 서사도 풀어 주기 때문이다.
동명의 영화처럼 엉뚱하고 마이너적인 소설일거라고 막연하게 짐작만 했는데 읽어보니 잔잔한 거 빼고는 딱히 공통점이 없었다. 마이너하기는 커녕 굉장히 메이저스러운 키워드로 가득한 작품이다. 화목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지금은 가족이 할머니 뿐인 제온과 무뚝뚝하지만 다정한 심성을 지닌 온건이 할리킹스럽지만 또 마냥 그렇지만은 않은 연애를 하는 이야기이다. 둘이 제온의 집에 누워서 알콩달콩 다정한 연애를 하던 장면이 제일 인상깊다. 상처를 가진 두 사람이 서로 보듬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표지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어딘가 위태로운 사람과 그 사람의 곁에서 든든하게 받쳐주며 서로 의지하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함이가 연상이고 승종이가 연하인데 가끔 두 사람의 나이가 뒤바뀐 것 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만큼 함이가 속한 세계가 호락호락 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함이 자체는 때묻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관계에 있어서 오직 두 사람만이 서로의, 또 자신의 감정에 매몰되어서 집중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소설에 나오는 두 사람이 딱 그런 형태의 관계에 놓여있어서 좋았다. 둘이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 눈에 그려진다.
내가 이 작품에 관심이 생겼을 때는 이미 판매 중지가 되어서 어느 곳에서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인기가 굉장히 많은 작품이고 작가가 힐러를 세상에 선보인지 십년이 넘은 걸로 아는데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걸 보니 재판 될 걸 믿고 기다렸다. 그 기다림에 보답을 받아서 행복하다. 읽어보니 왜 많은 사람들이 작가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 필력과 맞바꿨다고 한지 이해가 갔다. 이런 큰 스케일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끌고 가는 힘이 대단했다. 읽는 내내 전율이 흘렀다. 여러모로 봤을 때 이 장르에서 전무후무한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예전에 작가님 개인 홈페이지에서 연재하는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완결까지 보지 못하고 중간에 잊어버렸다가 최근에 다시 기억이 나서 구매해보았다. 병약수 까칠수 도련님수 머슴공 헌신공 강압공 계략공이 나오는 다소 클리쉐적인 이야기이다. 까칠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초반에는 아무리 아파도 그렇지 뭐 저렇게 신경질적인가 싶어서 수한테 크게 정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공의 처지가 불쌍하기도 하고..그런데 공이 마냥 착한 놈은 아니어서 나중에는 수도 좀 안쓰러웠다. 관계전복이 되어서 재회하는 이야기가 클리쉐인데도 비엘계에 흔하지 않아서 귀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