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개정판
강화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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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젊은작가상 수상작품들은 한 작품을 제외하고 모두 젠더와 퀴어를 주제로 삼고 있다. 총 여섯 작품 중에 내가 인상 깊게 읽은 작품들은 장류진의 <연수>와 김초엽의 <인지 공간>이다.

<연수>가 주는 유쾌하고 따스하고 코믹하나 씁쓸한 느낌이 좋다. 나는 주인공이 운전 연수 신청할 때부터 자연스럽게 강사가 남자일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예상을 깨고 중년 여성이 강사로 나온 장면에서 충격을 받았다. 아직도 내가 이런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아무튼 이 소설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소리 내 웃었는지 모를 정도로 정말 즐겁게 읽었다. 최근에 젠더에 관련한 작품을 접하면서 이렇게 유쾌한 기분을 느꼈던 적이 있나 싶다. 내 또래의 비혼여성들이 우리 엄마 세대나 또래의 기혼자들에게 가지고 있는 편견들이나 불만 혹은 고마움이 잘 표현되어서 깊은 공감을 하면서 읽었다. 소설은 기혼자나 비혼자나 엄마 세대나 내 세대나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야 할 존재들이지만 서로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틈도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그래서 이 소설은 씁쓸하지만 유쾌하고 차갑지만 따뜻하다. 읽는 내내 마치 냉탕 온탕을 왔다갔다하는 기분이었다. 장류진 작가의 글은 이 작품으로 처음 접해보았는데 최근에 나온 장편 소설도 꼭 읽어보고 싶다.

<인지 공간>은 다수의 인간에 의해 장애가 규정되어버리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sf란 장르로 묘사한다. 이브라는 이름값을 하듯이 이 소설에 나오는 이브는 제나에게 선악과를 먹이고 떠난다. 그 선악과 덕분에 인지 공간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버린 제나는 이브가 이루지 못한 것들을 이루러 세상 밖으로 나선다. 제나의 앞날에는 쉽지 않을 일 투성이겠지만 결국 인간이 선악을 알아버린 것처럼 제나의 세계도 변할 것이다.

그나저나 젊은작가상은 매년 갈수록 소재의 다양성을 잃어가는 듯싶다. 뒤편의 심사 경위에서 거론됐듯이 앞으로 젠더와 퀴어가 계속 문학계의 주요한 흐름이 될 것이라고 평단은 전망하고 있다. 두 주제가 몇 년 동안 우리 사회의 큰 화두로 다뤄지고 있고 사회 문제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문학계가 두 주제를 소재로서 좋아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좋아해서 창조하고 소비하는 것을 넘어서 개인사를 마치 창작한 듯이 거짓말해서 팔아먹는 건 매우 큰 문제이다. 젊은작가상에 소개되었던 몇몇 작가들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무단으로 가져다가 쓰고 당사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들이 계속됨에 따라서 나는 일부 작가나 독자들이 이 두 주제를 자극적인 재미나 화제성을 얻기 위해 이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든다. 젠더나 퀴어 문제가 성역이라는 말이 아니다.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성차별과 성 소수자 차별 때문에 고통받으며 살고 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어만지고 때로는 날카롭게 문제점을 지적하며 민낯을 들추어내 더 나은 세상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문학이 그저 명예, 일회성 재미, 돈을 위해 다른 이들의 아픔을 이용하는 것을 볼 때마다 이 모든 것이 기괴하다는 느낌이 든다. 문학의 고귀함을 들먹이며 예술을 부르짖던 이들이 사실은 소비와 공급을 통한 자본만을 탐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소름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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