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과거
은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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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든 생각은 '영화로 만들어지면 대박나겠다'였다. 나는 책에서 나오는 70년대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시대에 대한 궁금증과 환상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읽는 내내 내가 모르는 시절을 투명 인간처럼 등장 인물들의 곁에 떠돌며 관찰하는 기분이 들어서 즐거웠다.


이 리뷰를 쓰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쓴 리뷰를 읽어보았다. 여성들이 주요 등장 인물인 이 책에서 주로 거론 되는 이야기가 연애라는 점에서 실망한 독자들이 많은 듯 하다. 그 시대를 산 여성 대학생들이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모두 연애에 열을 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작가는 왜 등장 인물들의 주요 이야깃거리를 연애로 잡았을까? 아마도 작가는 연애 이야기를 주로 꺼내 놓음으로서 그 시대가 젊은 여성들에게서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시대에 대학까지 나왔으면 굉장한 엘리트인데도 대부분의 등장 인물들은 취업 걱정이나 공부 걱정 보다는 연애, 만나는 남자의 능력이나 외모에 더 공을 들인다. 등장 인물 중에 제일 학업에 열중하는 최성옥 마저도 결혼을 약속한 남자를 뒷바라지 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결국은 그 길을 걷는다. 어차피 취업해봤자 승진 길은 막혀있고, 연봉은 오를 일이 없으며, 결혼 및 임신이라도 하는 날에는 퇴사 압박을 받는다. 아니, 애초에 능력을 마음껏 펼칠 위치에 갈 기회조차도 주어지지 않는다. 회사에서 여성은 뽑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엘리트 여성들은 졸업하면 결국 동네의 책방 같은, 같은 학벌의 남자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적은 돈을 버는 직업을 택할 수 밖에 없다. 연애에 열심을 다하는 등장 인물들과 여성들에게 각박한 사회의 모습이 소설 내내 그려진다. 결국 그 시대의 사회에서 원하는 것은 결혼해서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며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워내는 현모양처였던 것 같다. 여성들을 가정의 아내라는 하나의 위치로 계속해서 떠 밀고 있는 사회의 면면이 잘 드러난다. 그렇게 등장 인물들의 삶은 결국 본인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결혼한 남자에 따라 나아지기도 하고 악화되기도 한다.


그런 사회에 가장 잘 순응하며 살아갈 것 같으면서도 거기에서 빗겨나간 두 인물이 바로 이 소설의 화자인 유경과 희진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유경은 성격이 유순해서 그냥 사회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살아갈 것 같았고, 희진은 정반대로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야망 때문에 잘난 남자와 결혼해서 사모님처럼 살아갈 것 같았다. 그런데 둘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본인 능력으로 벌어 먹고 사는 모습이 과거와 비교되어서 재미있었다.


아무튼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과거를 살았던 여성들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은 나 같은 사람에게 이 책은 단비와도 같다. 이와 같은 태도로 읽는다면 이 소설을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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