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는 것도 사랑입니까
황경신 지음, 김원 사진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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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그대가 물으면

 

그 사랑이 어떠했냐고 먼 훗날 그대가 물으면 어떻게 할까

눈물은 모두 바람에 말라버렸다고 대답할까

그대가 허락하지 않았던 눈물 때문에

내 마음도 서걱서걱 말라버렸다고 대답할까

그리워한 시간들은 모두 모래알이 되어

그 때부터 사막 하나 지니고 살았다고 할까

아직도 사막 언저리 어딘가에

그리운 그대 서성인다고 할까

 

먼먼 훗날 그대 내게 사랑을 물으면 어떻게 할까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그대에게 있으니

나에겐 처음부터 사랑이 없었다고 할까

그대 사랑한 것은 거짓이라고 할까

 

-Chapter 07 목숨처럼 무서운 사랑도 무엇이 어떻다고 잊지 못하겠습니까 중



‘지워지는 것도 사랑입니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 모든 일 중에 아마도 가장 어려운 일, 마지막 시험이자 궁극적인 증명, 그 외의 일들은 이를 위한 준비일 뿐 이라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글귀로 이 시집은 문을 연다. 김원 씨의 아름다운 사진 위에 황경신 작가의 가슴 절절한 구절들이 나열된 이 시집은 책을 읽는다는 느낌보다 시와 사진의 콜라보 때문인지 작품을 감상한다는 생각이 더 들게 만든다. 사랑할 때 느끼는 수많은 감정을 글귀로 나열한 것을 보고 있노라면 지난 사랑에 대한 아련함, 후회, 미련들이 물밀 듯이 밀려오는 것만 같았다. 영혼 시라는 말이 이래서 나온 걸까?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오래전에 적은 글들이라고 했다. ‘상처가 아물고 남은 자국은 아름다울 것도 없고 자랑스러울 것도 없으나, 그 자국을 남긴 때와 장소, 우연과 인연,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거기 새겨져 있어, 최소한 진부하지 않다, 비록 그것이 하는 이야기가 낡고 빛바랜 것이라 해도.’라는 말을 했다. 나는 이 말에 많은 공감을 했다. 사람들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갈망하지만, 때로는 낡고 빛바랬지만 추억의 한 조각이고, 훗날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아름다운 것들은 분명 존재하니까.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눈물은 내 마음이 아직 따뜻하고, 살아 있음을,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영혼을 위로하는 시라는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접하고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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