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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풍경 - 글자에 아로새긴 스물일곱 가지 세상
유지원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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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풍경’이라는 글자가 하얀 화선지 위에 놓여 있다. 깨끗한 느낌이 든다. 어릴 적 서예를 배울 때가 떠오르며 책에서 먹 냄새가 나는 듯하다. 활동성이 강하지 못한 조용한 성격이었던 나에게 한템포 더 다운 시켜주던 활동이 붓글씨였다. 명상과 같은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길지 않았던 어릴 적 경험을 돌이켜보다 보니, 건축도 공간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하던데, 글자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자에 아로새긴 스물일곱 가지 세상’이라는 부제에서 ‘세상’에 방점이 찍혔다. 글자를 통해 세상을 얘기한다?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우리들의 생각과 아이디어에서 발견되고 만들어지는 것이 글자니까 글자를 만드는 한 개인 또는 단체의 생각정도가 반영되는 활동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이야기가 담겨 있다니 흥미로웠다.

 

영화감독 박찬욱, 과학자 정재승, 글자체 디자이너 류양희 님까지 쓰신 추천사를 보니 알 듯 말 듯 하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면 알 수 있다. 왜 그들이 추천사에 그런 말들을 했는지.

유지원은 과학자의 머리와 디자이너의 손과 시인의 마음을 가진 인문주의자다. ?박찬욱 영화감독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이제 당신은 양식이 다른 글자들이 서로 다른 목소리로 당신에게 말을 거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정재승 과학자

 

늘 곁에 있어 익숙하고 잘 안다고 생각했던 글자들의 새로운 모습을 알아 가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 유쾌할 것이다. ?류양희 글자체 디자이너

추천사 중에서


역시 어떤 역사를 얘기하든 가장 먼저 유럽사가 나온다. 글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익숙하게 쓰고 있는 로마체가 적용되어 있는 글자부터 나온다. 낯설기만한 블랙레터체. 이 글자체 하나만 보더라도 라틴어 표기, 이탈리어 표기, 프랑스식, 독일어식 등 다양하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조금 다른 같은 글자체로 보이는 데 말이다. 이름도 낯선데 이렇게나 다양하다니. 글자만 얘기하는지 알았는데, 글자와 함께 지역 생태성을 얘기하기도 한다.

 

글자도 각자 처한 저마다의 생태적 토양에서

배태되고 자라나는 생물 같아서, 로마자는 알프스

북쪽의 자연과 인문, 기술 환경 속에서 새로 적응한 외양을 갖추어 갔다.

31p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글자는 어떤 종류가 있고, 어떻게 쓰고, 변화과정은 어떠했는지 정도를 알려주는지 알았다가 놀라고 말았다. 이런 식으로도 연결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흥미로웠던 부분 중 하나는,

독일의 여러 글자체들에서 에스와 제트 혹은 에스와 에그가 에스체트로 어떻게 연결되고 관계맺으며 이어지는지 그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다.

 

 

부러웠던 부분도 있었는데,

저자가 스웨덴 욀란드섬의 바이킹 룬 문자를 찾기 위해, 룬 문자 비석들의 위치를 알아보고 있을 때 일이다. 저자가 독일에서 지내던 2007년만 해도 욀란드섬의 어디에 정확히 룬 문자 비석들이 위치해 있는지 알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욀란드 관광국에 도움을 청했는데 관련 자료들을 수소문한 스웨덴어 복사물과 욀란드 관광지도를 보내 주었다고 한다. 심지어 룬 문자 비석의 위치가 손수 표시되어서. 그저 찾을 수 없다고 넘겨도 됐을 텐데, 이리저리 수소문해서 그 위치들을 찾아낸 데까지만 하나하나 손으로 체크해서 보내줬다니! 감동 그 자체다.

 

 

글자체 하나를 알기 위해 저자는 직접 찾아가서 확인하는 방법을 택했다고 한다. 위 얘기만 보더라도, 한 글자만 알기 위해서도 꽤나 복잡하고 힘든 과정이 있다. 그런데 유럽, 아시아, 이슬람 등 다국적의 글자체를 모두 조사했다니, 읽을수록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글자들의 조합과 배열은 문자문화권마다 다른데, 공간을 인식하는 틀도 다르다. 대체로 수직과 수평 그리고 사각형 격자 구조를 갖는다고 하는데, 90도와 그 배수가 아닌 각도로 공간을 구획한다면, 글자 배열은 어떤 모습으로 구현될까?라는 물음이 생겼다고 한다. 결국 결정학과 고체물리학으로 관심이 이어졌다고 하니, 글자 하나를 알기 위해 얼마나 다양한 분야가 연결되어 있는 것인가. 글자 하나만 알아서는 절대 알 수 없음이다.


단연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장은 2장 ‘한글, 한국인의 눈과 마음에 담기는 풍경’이다. 어쩔 수 없는 한국인 인가보다. 가상으로 세종대왕의 편지 형식을 수록해서 글자를 설명해 주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혹시 명조체의 뿌리는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궁체라고 한다.

 

궁체는 궁녀들이 궁에서 쓴 글씨체인데, 한글 글씨체의 발달사는 조선 후기 이후 여인들이 주도해 왔다고 한다. 여성들이 뛰어난 재능을 맘껏 펼칠 수 없는 시대에 여성들이 주도했다니 멋진 일이다.

 

오늘날 디지털 폰트 궁서체로 복원되었고, 붓으로 쓴 한글 글씨의 이 양식은 지금 저자의 책에서도 사용되고 있는 명조체 폰트의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얼마나 오래 된 서체인지, 어떤 의미를 갖고 탄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서체 종류를 자세히는 모르지만, 알고 있거나 사용해 본 서체 중 가장 끌리는 건 흘림체다. 알 듯 모를 듯한 서체가 묘한 끌림이 있다. 서예를 배우던 어린 시절부터 남몰래 흠모했었다. 흘림체는 부드러운 생크림이 떠오르게 한다. 고딕체나 바탕체와 같이 정갈한 맛은 없지만, 물 흐르듯 자연스러움이 배어 나오기 때문이다. 관련 챕터를 보니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흘림체에서는 손의 빠른 운동성이 글자의 형태에 그대로 실린다. 그래서 역동적이고 생동감이 있다.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유연한 흐름과 고유한 리듬이 글자 구조와 세부에 영향을 미쳐서 흘림체만의 독특한 형태가 나타난다.

-179p

 

 


 

하나 하나 설명하자면 끝도 없을 것 같다. 그만큼 다양한 글자체에 대한 개념과 역사, 문화, 과학 얘기까지 풍성하게 담겨져 있다. 읽다 보면 소설책 보다 더 흥미로워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흥미가 없던 사람들조차 글자를 써 보고 싶고, 알아 보고 싶게 만드는 마력이 담겨 있다.

 

책을 읽으며 필사를 자발적으로 유도하는 책은 실로 오랜만이다. 내용을 좀더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필사를 자주 하지만, 내용을 적으면서 글자체까지 살펴보게 한다. 좀더 다양한 글자체로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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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극단적일까 - 사회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극단주의의 실체
김태형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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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현재 모습의 발견, 극단주의

- 한줄요약 by 프레디퀸

‘넌 왜 이렇게 극단적이니?’ ‘저들은 너무 극단적이야’

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극단적’이라는 단어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몰랐다.

단어에서 풍기는 느낌적인 느낌으로만 알고 있었다.

‘한쪽으로 치우친, 극과 극인 생각들을 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분야가 정치다.

언론을 통해 뉴스를 접하다 보면, 정말 되묻고 싶다.

‘당신들은 왜 그렇게 극단적이냐고’.

어쩔 수 없이 보수와 진보, 중도가 있다지만 너무 지나친 보수 성향을 보고 있자면,

소름이 끼칠 정도다. 진보나 중도 또한 평소엔 잘 모르지만, 어떨 땐 지나치다고 느낄 때도 있다.

그래서 제목을 봤을 때 나의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있을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책을 덮은 지금, 어느 정도 궁금증은 해소 되었지만, 답답함은 여전하다.

변화시킬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방법조차 떠오르지 않아서.

 


 

읽으면 읽을수록 머리가 무거워진다. 이해가 되다가도 잘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기 때문이다.

심리학도 낯선데 사회심리학자의 눈으로 보기는 더 낯설고 어렵다. 그래도 다행인건,

국내 저자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외국 저자가 쓴 내용이라면 저자가 자주 접했을

외국 사례들에 집중되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려운 내용의 이해가 더 난해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저자는 심리학과 관련된 대중서를 많이 집필했던 전공자였고,

적절한 예시를 보여줌으로써 흔들리는 나의 멘탈을 잡아주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예시는 71쪽에 나왔던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부분이었다. 뜻밖에 이슬람과 우리의 역사에 공통 분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똑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럴 듯했다. 비슷한 이유로 유사한 감정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갖고 있던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갖고 있던 부정적인 생각이 다소 흐려짐을 느꼈다.

 


 

내내 불편하게 했던 감정은 답답함과 분노이다.

미국과 서구 강대국들에 의해 만들어진 극단주의라는 현상이 전세계에 퍼질 수밖에 없었던

종교적, 심리적, 정치적 등의 다양한 이유들을 보자니 분노가 끓었다. 나쁘고 위험할 수 있는

이런 현상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심지어 심화되고 있음에 답답했다. 우리나라만 봐도,

민주주의를 하고 있다지만 멀리서 보면 그렇지도 않다. 말만 보수, 진보, 중도라고 할뿐

그들이 하고 있는 행태는 그저 극단주의적인 말과 행동일 뿐이란 생각이 든다.

그내들의 집단에서 자신들의 생각과 일치하는 사람들과의 교류만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른 쪽을 보는 척만 할뿐 사실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10년 넘게 극우적인 정치세력이 집권을 하다가 이제 겨우 민주적인 정치를 볼 수 있을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내가 원하는 만큼의 결과는 보기 힘들 것 같다.

극단주의에 흠뻑 젖어 있는 그들이 정치를 하는 한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생각조차 너무 극단적인걸까?

특히, 나에게 공감을 줬던 부분을 발췌해 본다. ▼▼▼

《공감구절》

21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지구촌은 극단주의 혹은 테러와의 전쟁으로 무척이나 소란스러웠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은 극단주의와는 다소 거리가 먼 나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인 오늘의 한국에서는 극단주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극단주의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가 배타성인데, 이를 기준으로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면 한국에서도 극단주의 경향이 쉽게 발견된다. 이와 관련해 한신대학교 심리아동학부의 강순원 교수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자신의 견해만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고, 다른 관점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매우 배타적인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14~15p

 

배타성의 예시로 '이슬람 그리고 서구의 비무슬림'에 대해 보여 준다. 9.11테러 사건 이후에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가 선포했던 말이다.

“중립은 없다. 우리 편에 서지 않으면 다 적이다.” 32~33p

 

그의 말은 “중간 지대는 없다. 당신은 우리 편이거나 아니면 적이다”라는 식의 전형적인

흑백 논리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학문으로서의 극단주의 연구에서는 ‘맨 끝’에 방점이 찍혀 있는 극단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그대로 받아들여 극단주의를 정의하면 안 된다. 그래서 상당수의 극단주의 연구자들은 극단주의를 ‘맨 끝’이 아니라 ‘과잉’의 문제로 바라본다. 즉 어떤 이념이나 종교를 과도하게 맹신하거나 어떤 행동을 지나칠 정도로 과도하게 혹은 과격하게 하는 것을 극단주의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25p

 

극단주의 특징을 '배타성, 광신, 강요, 그리고 혐오'라고 하면서도 다음과 같이 얘기하기도 한다.

 

혐오는 극단주의의 특징 중 하나지만 배타성, 광신, 강요에 비하면 다소 덜 중요한

부차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것을 극단주의로 규정하기 위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3대 특징이 배타성, 광신, 강요라면 혐오는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특징은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배타성, 광신, 강요가 결합되면 혐오는 필연적으로 유발된다. 하지만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는 대상에 대한 혐오는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므로 누군가가 어떤 대상을 혐오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그를 극단주의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44p '극단주의 들여다보기'

 

전통적으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성경의 자구 하나도 수정할 수 없다’ 혹은 ‘성경은 100퍼센트 진리이므로 성경을 자구 그대로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식의 ‘성경의 무오류성’을 주장해 왔는데, 이것은 21세기인 현재까지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는 과거에도 그랬듯이 현재에도 극단주의와 테러리즘의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70p '기독교 근본주의'

이슬람 근본주의의 출현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천 년 세월 동안 아래로 내려다보았던 서구 사회에게 지배당하는 과정에서 손상당한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시도 그리고 서구 제국주의 나라들의 침략과 지배에 대한 반작용으로서의 복수심이나 반항심이었다. 한마디로 이슬람 근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제국주의 나라들의 이슬람권 침략이 만들어 낸 괴물이라는 것이다. 73~74p '이슬람 근본주의'

 

합리적인 의심이나 비판이 없는 믿음은 곧 맹신이고 광신이다. 따라서 그것이 종교든 아니든 간에 의심이나 비판이 배제된 믿음은 극단주의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종교, 특히 일신교는 의심이나 비판을 달가워하지 않거나 허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특별히 높다는 저에서 다른 것들보다 광신, 나아가 극단주의로 연결될 위험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고 말할 수 있다.

 

 

종교도 다른 모든 지식들처럼 시대에 맞게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해야 한다. 다시 말해 종교도 열러 있어야만 한다는 말이다. 제아무리 예수나 붓다라 할지라도 그들이 옛날이 아닌 21세기에 나타났다면 옛날 옷이 아닌 요즘 옷을 입고 있을 것이고 옛날과는 사뭇 다른, 요즘 사람들에게 필요한 진리들을 설파하지 않았을까? 79p '종교에 드리워진 극단주의의 그늘'

 

 

중도적인 입장 또는 온건적인 입장의 사람들이 떠나가고

열렬한 신봉자들만 남는 ‘자발적 분류’와 ‘자기 선택’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통해 집단에 남는 사람들은 서로를 가장 잘 맞는

사람이나 친한 친구 또는 가족 못지않게 소중한 존재로 여기게

된다. 이것은 아주 위험한 상황으로,

이렇게 구성된 집단은 근친적 애정과 연대감으로 뭉치게 되고

구성원들끼리만 토의를 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극단주의자들이

휘젓고 다니게 된다. 한마디로 온건론자들이 밀려나는 집단일수록 극단화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112p

 

 

집단에 남는 서로를 가장 잘 맞는 사람이나 친한 친구 또는 가족 못지않게 소중한 존재로

여긴다는 것. 현실이 아닌 온라인 SNS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다. '잘 맞는'사람들하고만. 맞지 않으면 손쉽게 끊을 수도 있고, 새로운 사람과도 쉽게 이어질 수 있다. 어떤 관계든 한 쪽으로만 치우침은 위험하다.

 

오늘날의 서구 지식인들은 인터넷을 통해 동질성을 강화하는 집단이 오프라인의

집단보다 더 위험하다면서 이런 집단들을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고 있다.

나는 인터넷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이런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총은 힘없는 나라를 침략하는 데 이용되는 제국주의의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그 제국주의의 침략에 저항하는 민족 해방의 무기가 될 수도 있다. 즉 문제는

총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주체인 인간 그리고 사회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112p '미국 심리학이 말하는 극단주의'

 

극단주의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지 못한 역사적인 장면에서도 극단주의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 놀랐다. 아래 내용은 놀라움과 동시에 무서움을 느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인간의 이기적인 극단주의를 나타내는 것 같아서.

 

 

 

역사적으로 볼 때, 소위 현재의 중동 문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발생한, 비교적 최근의 문제다. 제1차,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이슬람권은 22개의 국가로 분할되어 독립하게 되었다.

여기에 영국이 아랍인, 유대인, 프랑스를 상대로

상호 모순되는 3중 비밀 협약을 맺은 것이 더해지면서 중동은

졸지에 세계의 화약고가 되어 버렸다.

1차 세계대전 시기, 영국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아랍인들에게는 아랍 국가의 독립을 약속하는 협약을,

유대인에게는 유대 국가의 창설을 약속하는 협약을, 프랑스와는 현재의 팔레스타인 지역을 영국과 프랑스가 분할 점령하기로 약속하는 협약을 맺었다. 이 3중 비밀 조약이 현재의 팔레스타인 분쟁의 결정적인 원인이다.

165~166p

 

 

한국의 경우에는 권력과 자본을 거머쥔 극소수 기득권층의 민중 억압과 착취가 70여 년 넘게 지속되었고 그 결과 민중의 분노 수준 역시 계속 높아져 왔다. 그러나 이슬람 사람들에게는 미 제국주의라는 적이 명확하게 보였던 반면,

군부 독재가 타도된 이후부터 한국인들은

적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볼 수 없었다.

한국의 기득권층은 문민정부를 내세워 폭력적인 방식이 아닌 각종 시스템, 제도, 법률,

정책 등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국인의 분노는 특정한 대상을 향해 폭발하기보다는 무차별적인 대상을 향해 표출되는

경향이 심해졌다. 한국 사회에서 각종 분노 행동이나 범죄가 증가하는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168p

 

 

요즘 벌어지고 있는 사건 사고들의 경향이 이러하다. 대상이 있는 것도 무섭지만, 특정되지 않은 모든 사람들에게 향한다는 사실이 더 놀랍고 소름 끼친다.

 

 

1980년대의 광주 민중 항쟁에서 광주 시민들은 계엄군을 몰아내고 광주를 직접

통치했는데, 이를 서구의 진보적인 지식인들은 과거의 파리 코뮌에 비유하여

광주 코뮌이라고 부르고 있다.

광주 민중 항쟁에 관한 여러 기록에는 광주 코뮌 시기에 범죄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으며, 헌혈자가 줄을 잇는 등 시민들이 서로를 위해 헌신하는 아름다운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

2017년의 촛불 항쟁에서도 항쟁 참여자들은 단 한 건의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고,

집회가 끝난 뒤에는 자발적으로 정리 정돈과 청소를 했으며,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에게 헌신하는 아름다운 장면들을 연출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군중 혹은 집단이 개개인들을

폭도나 괴물로 만든다는 견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180p

 

 

이 책에는 다양한 예시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있었던 주요 장면들과 외국의 비슷한 사례들을 함께 보여 주니 비교가 쉽다. 또하나, 역사는 일정한 주기로 반복된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소름끼칠정도로. 하지만 이제는 나쁜 역사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극단주의의 특징을 설명해 주고, 이제 극단주의의 원인을 알려 준다.

안전에 대한 위협, 권위주의적 성격, 혐오와 분노, 부추기는 지배층. 극단주의의 특징과 이어지는 부분이 많다. 원인으로 인해 나타나는 특징일테니까.

부자가 가난한 노동자에게 갑질을 했다고 해 보자.

만일 이 노동자가 부자들만 골라서 살인했던 1980년대의 지존파에 관한 정보를 접하게 되면

-사실 여기에는 그의 정신 건강, 도덕성 등이 나쁘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부자들은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거나 살해하는 범죄 집단을 만들어 부자들을 살해하려 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손상된 자존감을 병적인 방식으로 회복하려는 시도다.

즉 극단주의는 자존감 손상을 병적인 방식으로 회복하려는 시도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215p

 

권위주의적 성격이 극단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권위주의적 성격이 전형적인 흑백 논리의 포로이기 때문이다. 힘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권위주의적 성격에게 세상 만물은 힘이 센 자와 힘이 없는 자, 이 두 가지로 명쾌하게 구분된다. 225p

 

어떤 사회에서 권위주의적 성격자가 늘어난다는 것은 곧 강자에게는 아부·굴종하는

반면 약자에게는 잔인한 공격을 일삼는 사회 풍조가 널리 확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종 차별 시대의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관한 연구는

‘아프리카계 남성들이 일터에서 당하는 굴욕과 야만성이 2선에 있는 여성에 대한

고강도 폭력으로 옮겨졌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런 식으로 100의 힘을 가진 사람은 90의 힘을 가진 사람을 학대하고,

90의 힘을 가진 사람은 80의 힘을 가진 사람을 학대하는 식의 공격이 확산되다 보면,그 사회는 상호 학대가 촘촘히 얽혀 있는 ‘학대 위계 사회’가 되기 마련이다.

226~227p

이 단어가 소름끼치게 했다. '학대 위계 사회' .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SKY캐슬'을 봐도 우리 현실을 잘 알 수 있다. 소위 엘리트라는 부모들이 자식들을 자신들보다 성공시키기 위해 모인 집단. 서로의 속내는 숨긴채 자기 자식들이 1등이 되게 하기 위해 애쓰는 부모들의 모습과 그 속에서 자신의 생각 따윈 존중받지 못한 체 살아가는 학생들이 있다. 100의 힘을 가진 사람은 90의 힘을 가진 사람을 학대하는, 동급인 사람들은 동급인 사람들끼리 학대하는 이런 사회라니. 알면 알수록 끔찍하다. 한편 지금과 같은 시절에 학생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한국 사회의 경우 극단주의를 묵인하거나 부추기는 사회적 조건이 거의 성숙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사회를 70여 년 넘게 지배해 오고 있는 극우 세력 자체가 극단주의 집단이고, 그들이 분할 통치와 차별 정책을 통해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혐오를 끊임없이 조장하고 부추겨 온 결과 극단주의 경향은 지배층의 울타리를 넘어 전 사회적 범위로 널리 확산되고 있으며, 돈독이 오를 만큼 오른 사이비 종교 집단들까지 가세하면서 한국에서의 극단주의 경향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238p

전체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된 목표를 위해 협력할 수 있으려면 국가 공동체의 재건이 필수적이다. 국가가 국민들을 차별 대우하지 말아야 한다. 과거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임진왜란 시기에 일부 백성들은 일본군에게 협력하거나 일본군에 합세해서

정부군을 공격하기도 했다. 그들이 적을 도왔던 이유는 평소 조선 사회 지배층에 의해 억압과 수탈을 당해 왔기 때문에 국가 수호라는 공동의 목표에 동의하지 못해서였다.

이것은 국가적인 차원의 공유된 목표는 차별과 학대가 사라진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에서만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269p '극단주의, 어떻게 예방하고 없앨 것인가'

극단주의 의미와 그것이 우리 생활에, 우리 각자에게 얼마나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그 깊이는 깊었고 단단했다.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도 부모를 죽일 수 있는 가족파괴 현상까지 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사회 공동체의 기초는 가족이라고 하는데, 가족이 이토록 심각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으니 사회는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족단위부터 시작해야할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국가 공동체 재건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가족을 바로 세우면, 그 속에서 자란 사회 구성원이 모인 사회 공동체는 자연스레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될지 큰 윤곽은 보이는데,

개인들이 무엇부터, 어떻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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