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살짝 비켜 가겠습니다 - 세상의 기대를 가볍게 무시하고 나만의 속도로 걷기
아타소 지음, 김진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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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자로서의 자신감이 전혀 없다.

 

 

 

프롤로그 첫 문장이 강렬하다.

'여자로서의 자신감'이란 무엇일까?

 

난 한번도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거나, 여자로 태어난걸 진지하게 후회해 본 적이 없다.

같은 '여자'인 것이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로 부끄럽다니, 이해할 수 없다. 끊임없이 자신을 못난이라고 하고, 자기 외모를 싫어하는 저자가 측은하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야 자기비하적인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걸까?

 

저자가 이렇게까지 된데는 어머니의 공로가 크다. 자신이 낳은 딸에게 '못난이'라고 부른 장본인이다.

이 대목에서 39년 전 내가 태어나던 순간이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면 엄마의 기억이지만, 태어나기 전부터 태생을 부정당한 나였다.

난 엄마가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기인한 상황이다.

나를 갖고 입덧이 유독 심했던 엄마는 음식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렇게 힘들면 낳지 말라는 얘기를 서슴없이 하셨다. 태아도 다 들을 수 있다는 걸 알고 그런건지 모르고 그런건지는 정확하지 않다. 어째뜬 말을 알아들을 때쯤 됐을 때 엄마로부터 듣고 적잖이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 일이 나에 존재를 부정하거나 여자로서의 자존감을 무너뜨릴 정도는 아니었다.

꼭 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어떻게든 나쁜 영향을 미친다.

나에게는 여자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건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러다 보니 연애도 잘 되지 않았다. 잘 지내다가도 상대가 날 왜 선택했는지, 날 왜 사랑하는지 믿지 못해 결국 이별까지 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저자는 엄마에게 들었던 '못난이'라는 말로 시작해 콤플렉스가 되고, 여자다움, 여자의 가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여자다움 등을 고민하게 된다. 주도권을 엄마에게 빼앗겨 버린 듯하다. 여자로서 이전에 한 사람으로 온전히 서지 못했기 때문에 성적인 형태에서도 의존적이 된 게 아닌가 싶다.

 

외모적인 별명은 아니지만 흔하디 흔한 '신똥개'라는 웃지 못할 별칭을 엄마로부터 받았다. 2차 성징이 일어나고 한참 예민할 때는 '나도 여잔데'라는 반발심이 일어나기도 했다.

 

저자와 반대로 난 엄마가 그럴 때마다 나의 여성성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의식적으로 행한 건 아니지만 저자와 달리 핑크색을 좋아했고, 누구보다 나에게 잘 어울리는 색이라고 생각했다. 옷을 사거나 악세사리를 사러 가면 나도 모르게 핑크색 주변을 어슬렁대고 있었다. 이번엔 다른 색을 골라야지 하고 마음 먹고 가도 역시나 그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구매까지 이뤄졌다. 비슷해 보이는 상처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그릇에 따라 반응이 달리 나오게 되는 건 아닐까.

 

 


 

 

 

P.13 콤플렉스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내 경우 그 원인은 어렸을 때부터 내가 예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도 어렴풋이 알았던 데서 기인한다. 어떻게 알았느냐면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나를 '못난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또한 어머니는 칭찬을 거의 하지 않았다. 자식을 칭찬해봐야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왜 엄마는 나한테 칭찬 안 해줘?"라고 묻자 "칭찬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라고 대답한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P.17 내가 어른이 된 뒤로는 어머니가 나를 못난이라고 부르는 일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대화 자체를 거의 하지 않게 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로 할 이야기가 없어지고 집에 있는 것마저 거북해지자 나는 독립해 따로 살게 됐다. 이제는 특별한 용건이 있지 않는 한 어머니와 연락조차 하지 않는다.

 

P.18 내가 여자로 존재하는 한,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못난이라는 말은 나를 깊은 밑바닥까지 떨어뜨린다. 아무리 많은 사람에게서 괜찮다는 말을 들어도, 내가 존경하는 사람에게 인정을 받아도 이 저주는 쉽사리 풀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아무리 날 예쁘다고 해주고 좀 더 자신감을 가지라고 격려해줘도 내겐 진심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저 노력해도 외모에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는 내가 불쌍해서 들려주는 위로라 여겨질 뿐이다. 남이 해주는 칭찬을 그냥 기쁘게 받아드리면 좋을 텐데, 나는 부모님에게조차 칭찬 한 번 못 받아봤기에 다른 사람의 인정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원인을 해결해야 모든 것이 풀린다. 어머니와의 관계를 잘 풀지 않는 한, 풀리지 않는 매듭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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