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의사입니다 - EBS 명의 윤영호 박사가 말하는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
윤영호 지음 / 컬처그라퍼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아름다운 이별, 인간에 대한 예의...

수 없이 이런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해왔지만 여전히 죽음을 대하는 나의 자세는 소극적이고 겁 먹은 아이 같다.

죽음을 영원한 헤어짐으로 인식하다보니 죽음의 의식 또한 무겁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내게 장례식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영화 <러브 액츄얼리>를 처음 보았을 때이다.

 

리암 닉슨 아내의 장례식 장면이었다.

스크린 가득 고인의 생전 의미있던 순간들, 가족들과 단란했던 풍경들이 떠올랐고,

연단에 선 남편은 아내가 했던 농담들과 일상 대화를 전했다.

그리고는 고인의 뜻대로 아주 멋있고 유쾌한 밴드 음악을 통해 작별을 고했다.

 

누군가의 죽음이 슬프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장례식은 심지어 고인의 마지막을 기쁜 마음으로 보내주는 축제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어쩌면 또 다른 시작일지도 모르는 죽음을 너무 비극적으로만 바라보고 슬퍼하는 장례 분위기가 아니라

떠나는 이를 멋있고 행복하게 보내주는 절차를 마련할수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저자는 오랜 시간을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연구하며 보냈다.

말기 환자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옳은가에서부터 시작해서 

의미없는 연명치료가 진정 그들의 마지막을 위해 적절한 행위인지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환자의 육신을 고통스럽게 하면서 삶의 질을 해치는 연명 치료에 회의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의미있는 삶의 마무리를 위해 호스피스와 완화의료는 필수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언젠가 우리는 매일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죽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어쩐지 서글픈 말이긴 하지만 사실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죽음이 올 것을 안다. 그리고 알면서도 매일을 열심히 살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쩌면 죽음이라는 것이 탄생보다 더 존중받아 마땅한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 세월 고난과 풍파를 겪으면서 살아온 그들이 영원한 안식에 드는 것이 죽음 아니던가.

그런 그들의 쉼을 도와주는 것이 바로 완화의료인 것이다.

환자의 남은 시간에 희망을 드리우고 고통을 줄여 일상의 기쁨을 돌려주고 삶의 질을 회복하도록 도와주는 것.

인간이라면 누구나 받을 권리가 있는 혜택인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약물 치료를 하느라 피폐해진 몸과 마음,

그런 환자를 돌보느라, 병원비에 허덕이느라 지쳐가는 가족들.

존엄한 마지막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어떤 환자나 살고 싶은 마음을 놓을 수 없을 것이고, 누구나 사랑하는 가족을 보내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떠나야할 것을 알고 있다면,

헤어질 수 밖에 없다면 남은 시간을 더 의미있게 보내야할 것이 아니겠는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본다던가, 먹고 싶었던 것을 먹고, 가고 싶던 곳엘 가보고,

사랑하는 이들과 온기 가득 담긴 눈을 한 번 더 마주치며 그간 하지 못했던 말을 하고, 들어주는 일.

그 순간을 의미있게 살아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작가에게 크게 공감한다.

인생의 마무리를 고독과 고통 속에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답고 따스하게 보낼 수 있게 하는 일.

그런 완화의료를 위한 법적, 제도적 인프라가 마련되고, 사람들의 인식도 변화하여 

내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우리 모두가 의미있는 마무리를 하게되길 바란다.

 

"네가 태어날 땐 네가 울고 세상이 웃었지만,

 네가 죽을 땐 네가 웃고 세상이 우는 사람이 되어라."

 

-인디언 속담에서 말하는 진정한 삶이란... p. 229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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