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용 없고 중독성도 없는 완벽한 진통제가 탄생하는 과정에는 ‘경’의 희생이 뒤따른다. 고통을 없애기 위해 NSTRA-14가 만들어졌지만, 그 이면엔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발생한다. 지속되는 몸과 마음의 통증으로 몸부림치는 경의 옆에는 언제나 ‘현’이 있다. 동시에 고통을 겪지 않은 인간은 신을 거부하고 구원을 모독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신흥 종교가 출현한다. 그들은 고통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며 구원을 향해 나아간다. 가난했던 한과 태는 교단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서 교단을 믿어야 했던 ’한‘과 교단을 지시로 제약회사를 폭파시킨 '태'. 제약회사가 폭파되면서 ‘경’의 부모는 사망한다. 그렇게 경과 태가 얽히고설킨 고통에 관하여 이야기. 그리고 그 끝엔 고통의 근원을 탐구하고 파헤치는 ‘엽’이 있다. 열두 명의 인물이 긴밀하게 이어져 있는 SF스릴러 장편소설이다. 흡입력 있는 문장에 책을 내려놓기 힘들었다 🧪 고통에 관한 저자의 서늘하면서도 따뜻한 통찰이 느껴졌다. 끝끝내 흐릿해지는 흉터처럼 과거를 내려놓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메시지가 마음을 울렸다. 문장의 호흡이 짧아서, 아슬아슬하고 습기 가득한 곳에서 인물들을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제발 누구라도 고통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바라기도 했다) 누가 더 고통스러운 건 저울질하는 건 쓸모없는 일이었다. 소설에 등장한 어느 누구의 고통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설령 언어로 이해가 되었더라도 감각으로 느껴지는 통증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사람의 삶은 모두 다르고 고통의 경험도,고통에 대한 대응도 각각 달랐다. 자신의 고통은 자신의 것‘이라는 문장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처럼 고통 받는 사람 옆에서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함께 한다는 게 의미 있는 부분이다. 이 소설은 복잡미묘한 인물들의 관계가 매력 포인트다! [경과 태: 부모의 죽음으로 엮인 남과 여] 결국 고통으로 점철된 경의 삶을 구원해낸 건 '자신'이었다. 위태롭고 이해할 수 없던 '경'과 '태'의 관계는 경의 손에서 끝이 났다. 경은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태를 만나, 내면의 혼동을 잠재우고 싶었던 것 같다. '망가졌더라도 살아갈 수 있고 살아갈 자격이 있다는 사실, 망가진 채 살아가도 괜찮다는 승인을, 같은 경험을 가진 다른 존재를 통해 재확인하고자' 했다. 하지만 경은 그럴수록 괴롭게 된다는 걸 깨닫고 태를 찾아가 직접 관계를 정리한다. 경에게 과거를 놓는다는 건 죽음과 같은 의미였을 것 같다. 자신이 고통 받을 수밖에 없던 이유가 납득이 될 때까지 과거에 머무를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는 '현'과 함께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경과 현: 고통의 치유하는 사랑] 몸을 웅크린 채 앓는 경을 끌어안는 '현'. 이 장면은 많은 걸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고통을 받아들이고 이겨내고 잊어가는 방식은 모두 제각각이다. 현은 경의 모든 고통과 그것에 대한 방식을 존중해준 사람이다. 그렇게 경은 현을 신뢰하게 되며 그들은 결혼한다. 누군가는 경이 갖고 있는 고통에 비해 삶의 이유(사랑)가 너무 단순하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다. 아무렴 흔들리는 나뭇잎도,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도 삶의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각자의 고통을 알 수 없듯이 가치 행복 두려움과 같은 감정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다. 이렇게 인간이 복잡하기 때문에 의미있는 것 같다. [륜 형사의 망각]P313) 그러나 지금 자신을 기다리는 배우자를 만나러 가야 했다. 륜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륜을 기다리고 있다. 형사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생활, 휴식과 사랑과 안정과 감정적 교류와 정서적 충족감의 삶을 륜은 배우자와 함께 몇 년에 걸쳐 주의 깊게 쌓아 올렸고 앞으로도 그렇게 공들여 가꾸엉갈 것이었다. 륜은 전화기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걸음을 재촉했다. 륜은 소설에 등장하는 '빛'을 눈 앞에서 놓친다. 당장이라도 서에 달려가 빛에 대해 파헤칠 것 같았는데. 륜은 배우자를 만나러 발걸음을 옮겼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한다. 아마 고통을 덜 느끼기 위해서 자동화되는 시스템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지나간 길은 잊고 눈 앞에 있는 자신의 삶과 행복을 잡으로 가는 륜의 뒷모습이 아른거렸다. 우리는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릴 때가 많다. 소중한 걸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