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
강은조 지음 / 우신(우신Books)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미쳤어, 미쳤어. 진짜 제대로 미쳤다, 서지윤."
스스로를 자책하며 그녀는 바닥에 멋대로 나뒹굴고 있는 옷과 속옷을 주워 슬그머니 방을 빠져나왔다. 쾅. 희미하게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훗, 같이 뒹굴었으니 나도 미친놈이 되는 건가."
한 번도 깨지 않고 실로 오랜만에 단잠을 잤는데 눈을 뜨는 그 순간, 모든 것이 꿈처럼 사라졌다.
"아침부터 기분 더럽군."
단잠을 잘 정도로 만족스러운 밤을 보냈는데 같이 잔 여자 입에서 나온 첫마디가 미쳤어라니, 실로 기분이 좋지 않은 이혁이었다.


 

서지윤(26세) : 스타일리스트. 대학교 들어가서 만난 남자와 뜨거운 연애를 했고 몇 년 후 아주 지독한 이별을 경험했다.

 

"근데 지금은 모르겠어. 그 사람이 점점 좋아져서 무서워."
스스럼없이 장난을 걸어 올 때마다 가슴이 찌릿하고, 그가 웃어 줄 때마다 마음이 한 뼘씩은 열리려고 한다. 언제부터 이렇게 가볍고 줏대 없는 인간이었나 싶을 정도로 그가 말하는 애인이라는 단어에 자꾸만 세뇌가 돼 가는 것도 같았다. 같이 있으면 설레면서 좋고, 헤어져 있으면 그리우면서 떨렸다. 점점 커지는 마음을 그에게 들킬까 봐 마음을 졸이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또 사랑이라는 걸 시작할까 봐 아니, 벌써 시작해 버렸을까 봐 무섭고 두려워."
채 아물지 않은 상처가 다시 덧나는 건 상상만 해도 아팠다. 그런 일을 또 겪게 될까 봐 섣불리 그에게 마음을 내보일 수가 없었다.

 

류이혁(31세) : 자타 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 아무한테나 속을 내보이지도 않고,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병적이다 싶을 정도로 완벽함을 추구.

 

매일같이 보는 연기자들과는 뭔가 다른 느낌의 여자였다. 옅은 화장 때문에 몇 시간만 지나면 고스란히 드러나는 맨 얼굴도 그렇고 남 의식하지 않고 큰소리로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웃는 것과 처음 만난 사람과 금방 스스럼없이 친해지는 모습이 그의 주변에 있는 여자들과는 많이 달랐다. 자신 앞에서도 기죽거나 눈치 보지 않고 할 말 하는 것도 그렇고 생각하는 게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도 어딘지 신선했다.

 


잠깐, 서지윤이 여자였나? 언제부터?
같이 일하는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구분 짓지 않는 그였다. 철저히 일로만 상대를 대했고 쓸데없이 성별을 따지지 않았다. 일을 잘하면 그냥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만 여겼다. 그런데 서지윤은 자꾸만 여자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아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여자로 보인다. 아무래도 몸이 좋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이성이 느슨해져서 마음이 약해진 탓이다. 서지윤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단지 아프기 때문이다.

 

 

"감기 들어요."
이혁이었다. 그녀는 팔을 든 채로 꼼짝도 하지 못했다. 감은 눈을 뜨지도 못했다. 하지만 곧이어 스르르 팔이 내려오고 시리던 손이 그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보다 더 따뜻한 온기가 손바닥에서 전해졌다. 당장이라도 땀이 배어나올 것처럼 그는 지윤의 손을 꽈악 움켜잡았다.
"눈 뜨지 말고 들어요."
"‥‥‥."
가슴이 뛰어 침을 삼킬 수도 없었다.
"그날 있었던 일, 난 실수 아닙니다."
쿵. 가슴에서 떨어진 심장이 발끝까지 내려왔다.
"그때 내 감정에 충실했고 서지윤 씨도 그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술에 취해서, 여자를 안고 싶어서 그랬던 건 절대 아닙니다."
이혁의 고백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무슨 말을 할지 듣는 게 겁났다. 그에게 잡힌 손을 빼지도 못하고 지윤은 그렇게 질끈 눈을 감고 있었다.
"서지윤 씨가 신경이 쓰입니다. 자꾸 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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