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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커피하우스
정다겸 지음, 송재정 극본 / 양문 / 2014년 5월
평점 :
커피하우스
강승연 : 서울특별시 구로구 고척2동 38번지 '궁전커피' 아마추어 바리스타. 9급공무원 시험 준비중.
이진수 : 소설가. 출간하는 족족 100만 부를 넘긴 초 초 초대박 인기작가. 웬만한 연예인 뺨치는 훈훈한 외모. 대중들 앞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신비주의.
"제 와이프가 지금 입덧이 너무 심해서 아무것도 못 먹는데, 신혼여행 때 먹었던 이 집 치킨이 먹고 싶다고 서울에서 여기까지 왔거든요. 저녁 비행기 타고 다시 올라가야 해서...... 지금 꼭 먹어야 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깨가 쏟아지는 신혼부부인 양 진수가 승연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승연은 순간 헉, 하고 긴장되어 몸이 굳었으나, 치킨집 주인이 '정말요?'라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봤기 때문에 진수의 장단에 같이 춤을 출 수밖에 없었다.
"우욱~."
승연은 어느새 입덧을 시작했다.
"아이구...... 세상에. 이를 어째."
주인이 안타깝다는 듯 쳐다보더니 밝게 웃으며 말했다.
"여기 좀 있어 봐요. 이렇게 특별한 손님을 어떻게 그냥 보내나. 내가 오토바이 타고 얼른 읍내 가서 닭 구해올 테니까 기다려요."
주인이 휭- 하게 나갔다. 진수는 승연의 어깨에서 손을 내리더니 여유롭게 의자에 앉아 TV를 켜고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승연도 따라서 마주앉았다.
"와아...... 아니 어쩌면 세상에...... 그렇게...... 소설을 잘 쓰세요?"
"소설가니까."
"아 참...... 소설가시지."
"자기도 소질 있어 보이던데."
"네?"
"우욱~ 도 할 줄 알고."
"제가 선생님을 선생님으로 안 보구...... 자꾸만...... 자꾸만 좋아하는 마음이 생겨서 그렇다구요!!! 그런데 선생님한테는 대표님이 계시고...... 그래서 표낼 수도 없고...... 일하면서 상사한테 이런 마음 품는 거, 그거 아마추어잖아요!! 프로 아니잖아요!! 그런데 저는, 자꾸 계속 좋아지는데 어떡해요!! 그래서 미국까지 따라가서 같이 있으면 그냥 막 뻥 터져버릴 거 같은데 어떡하라구요!!!"
"......뭐어?"
진수는 이미 빵 터져버린 듯 엉엉 울고 있는 승연을 기막힌 듯 바라봤다. 눈물 때문에 가뜩이나 검고 커다란 승연의 눈동자가 더욱 크게 보였다. 저 커다란 눈으로 '프로가 되고 싶어요!!!'라고 외치던 그때가 갑자기 오래전 일처럼 느껴졌다.
"좋아. 세번째 이유는 차분하게 살펴보자. 우서, 서 대표하고 난 아무 사이가 아니야."
"......예?"
끄윽끄윽 울던 승연이 조금 정신을 차렸다.
"임자 있는 남자 좋아하는 불륜코드는 패스."
"정말요?"
"이 와중에 재확인까지 하고 싶어? 하긴, 중요한 거니까 재확인 인정. 서 대표하고 난 아무 사이가 아니야."
"아......"
"다음, 일이냐 사랑이냐 양자택일의 문제인데, 난 일하면서 사랑까지 하는 게 아마추어라고 생각하지 않아. 오히려 고도의 프로만이 그 두 가지를 할 수 있다고 봐."
"아~~~~."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문제는 짝사랑인데, 그건 자기 노력여하에 달린 거 아닌가? 내가 자기한테 반하도록 최선을 다하는게 해결 방법인 거 같은데. 물론 그러려면 당연히 비서직을 계속하는 게 유리할 거고."
"아~~~~~~~."
승연은 어느새 눈물을 멈추고 입을 쩍 벌린 채 진수의 달변에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있었다.
그러다 승연의 뇌리 속에 순간, 무언가 번쩍~ 하고 지나갔다. 설마...... 설마......
"선생님......"
"응?"
"지금...... 저한테......선생님 꼬셔보라고 시키시는 거예요?"
"어?"
"설마......설마, 선생님......"
승연은 두 번의 실수는 하고 싶지 않아 고개를 계속 갸웃했다. 진수의 작업실로 찾아가 처음 이 질문을 했을 때는 지금이랑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어어어엄청 아마추어였고, 또 술까지 취했었다. 그래서 그 망신을 당한 거였지만...... 하지만 지금은 다르잖아! 이제 난 이진수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웬만큼 알고, 또 알코올이라고는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은 제정신이라고!!
승연은 침을 꼴깍 삼키고 물었다.
"혹시...... 저...... 좋아하시는 거예요?"
진수는 승연의 빛나는 까만 눈동자를 쳐다봤다. 앞으로 이 눈동자를 바라보고는 거짓말을 잘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아닌데."
물론 장난이야 칠 수 있겠지만.
"혹시가 아니라, 확실히, 좋아하는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