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비
이명우 지음 / 로담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장이수(30세) : 소화기내과 전문의. 아빠의 소원이었고 자신의 꿈이기도 했던 의사가 되기 위해 이수는 20대를 고스란히 받쳤다.

 

 

이주한(36세) : 부모님의 교통사고로 어느 날 갑자기 어린 동생과 함께 고아가 된 주한은 세계적인 호텔 재벌이자 카지노의 제왕인 존 스미스에게 입양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머리 좋은 고아, 그것이 주한이 그에게 선택된 첫 번째 이유였다.

 

 

 

“당신이라면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서 총을 들이댄다고 이 어린 아이를 내놓겠어요?”
“대부분 그래.”
“하, 난 아니거든요! 사람 잘못 봤어요! 당신이 누군지 몰라도 아이를 원한다면 신분부터 밝혀요! 만약, 진짜 만약에라도 당신이 아이의 보호자라면 그 증거를 가져와요! 그 전엔 내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절대 이 아이 넘겨줄 수 없어요.”
이수는 재빨리 한 쪽 팔을 뻗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며 말했다.
“당신도 지금부터 꼼짝 말아요. 만약 그 방아쇠 당기면 나도 안 참아요! 바로 신고할 거예요. 내 친한 친구가 지구대 경찰이에요! 만약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출동할 거예요. 아, 참고로 내가 경찰서장님과도 아주 친분이 두텁다는 말을 하고 싶군요!”
사실 경찰서장님의 이름은커녕 얼굴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수는 너무나 당당하게 말하다보니 스스로 진짜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전부 거짓말은 아니잖아? 지구대에 경찰 친구가 있는 건 사실이었다. 배짱 좋은 그녀의 협박이 통했는지 남자는 겨누고 있던 총을 천천히 내리며 몸을 폈다.
뭐야? 진짜 겁먹은 건가?
이수는 갑자기 총을 내리는 남자를 향해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녀의 품안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이수는 곧장 고개를 숙여 아이를 바라봤다. 아이가 졸린 눈을 비비며 잠에 취한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봤다.
“아, 아빠!”

 

 

 


“당신이 필요해. 지금 당장!”
그가 무지막지한 힘으로 그녀의 손을 잡아당겼다. 이수는 미처 무언가 하기도 전에 그의 힘에 문밖으로 끌려 나갔다.
“이거 놔, 놔요!”
이수는 격하게 소리치면서 다리에 힘을 주며 몸을 뒤로 뺐다. 어떻게든 끌려가지 않으려고 낡은 대문 손잡이를 꽉 잡았다. 낮 도깨비도 아니고, 갑자기 나타나 아무런 이유도 설명도 없이 무작정 끌고 가는 남자를 따라갈 정도로 이수는 멍청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래요? 정말 미치지 않고서야…….”
“새벽에 호수에서 쓰러진 윤이를 찾았어.”
역시나 기습 공격처럼 그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격하게 소리치며 힘주어 버티던 이수는 뜻밖의 말에 놀라 그를 올려다봤다. 그의 굳은 얼굴 위로 눈물처럼 굵은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윤이가 계속 당신을 찾아.”
그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지 않은 채 묵묵히 말했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음성도, 변화 없는 표정도, 처음 본 그 순간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이수는 어쩐지 알 것 같았다. 그가 지금 이 자리에 어떻게 서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여기까지 달려왔을 지, 그리고 얼마나 초조한지도…….
그가 자신의 아들을 위해 여기까지 단숨에 달려왔다는 것도, 도와달라는 표현을 저렇게 오만하게 말하고 있다는 것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가 더는 그 어떤 설명도 하지 않은 채 다시 그녀의 손을 힘주어 잡아당겼다. 방심하고 있던 이수는 순간 확 끌려갔다. 하지만 다시 몸에 힘을 주며 외쳤다.
“자, 잠깐만요! 잠깐!”
“고소는 모두 취하해 주겠어. 피해보상도 충분히 하고, 원한다면 수고비도 넉넉하게 주지. 그러니까, 아무 말 말고 순순히 따라와!”

 

 

 

장이수, 그녀가 윤의 침대에 잠들어 있었다. 마치 어미 새가 알을 품은 듯, 윤을 가슴 깊이 꼭 끌어안고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주한은 자신도 모르게 숨죽여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반듯한 이마, 우아하게 뻗은 긴 속눈썹, 섬세한 콧날, 웃고 있는 듯 부드럽게 말아 올라간 입술, 그리고 만져보고 확인하고 싶게 만드는 윤기 나는 피부까지.
처음으로 그녀를 자세히 바라본 그는 시선을 내려 윤을 바라봤다. 그녀처럼 긴 속눈썹을 곱게 감고 편안하게 잠든 윤의 입술도 빙그레 웃는 듯 올라가 있었다. 마치 하나의 꿈을 꾸는 듯 그녀와 윤의 잠든 모습은 너무나 닮아 있었다.
엄마, 윤이는 엄마를 원했다. 꼭 생모를 원한 게 아니라 막연한 그리움의 대상인 엄마를 원한 것이다. 저 여자처럼 함께 잠들고 안아줄 엄마…….
계획하지 않았던 새로운 그림이 주한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여자란 동물의 탐욕스러운 속성을 알기에 그는 윤의 인생에서 처음부터 엄마는 제외시켰다. 자신이 느껴보지 못했던 엄마이기에 윤에게도 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세상의 모든 엄마가 동화처럼 아이를 사랑하진 않는다는 걸 알기에 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이라면 가능할까? 위험한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점점 들어찼다. 엄마가 있는 집, 그리고 아빠와 아이…….
쿵쿵, 심장소리가 뜨거운 밤이다. 엄마의 눈물처럼 하루 종일 흘러내리던 봄비도 드디어 멈췄다. 어떻게 하면 될까? 당신을 운이 엄마로 만들려면…….
유난히 어두운 이 밤, 미치지 않고서야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주한에게 벌어지고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