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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강화
이태준 지음, 임형택 해제 / 창비 / 2005년 3월
평점 :
이태준의 <문장강화>가 개정판으로 서점에 등장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시큰둥했다. ‘시에는 지용, 문장에는 태준’이라고 한다지만 책 보면서도 무슨 문장을 강화시킬 수 있을까 싶어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방송작가에 입문한지 얼마 안 되는 친구 녀석이 개정판이 나왔다며 노골적으로 기뻐하는 것이 아닌가.
무슨 이유인가 했더니 아카데미에서는 과거의 것으로 공부해 어려움을 겪어 좋은 건 둘째 치고 다시는 안 보겠다고 생각했는데 깔끔한 개정판을 보니 마음이 동했다는 것이었다. 친구의 마음이 동하자 내 마음도 동했다.
그래서 ‘국민적 교양서’라는 글쓰기 교본을 손에 쥐었다. 자, 과연 이태준의 <문장강화>는 어떤 비결이 있길래 그리도 ‘문장에는 태준’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먼저 <문장강화>에 대해 말하기 전에 이태준에 대한 설명을 안 하고 갈 수가 없다. 이태준은 누구인가? 20세기 초에 태어나 수십편의 중단편소설과 열 편 이상의 장편소설을 써낸 이다. 요즘이야 다작하는 작가가 워낙에 많다지만 이태준의 활동시기를 보라. 일제 시대다. 그 시대에 그렇게 다작할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창작열의 증거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창작열뿐만 아니라 문장력 또한 한 솜씨 했다고 하니 이태준의 이름은 더 빛난다. 사실 문장과 문장을 놓고 우열을 가린다는 것이 무의미한 일이겠지만, 최소한 이태준의 <문장강화>가 꾸준히 인정받고 지금 개정돼 나왔다는 것은 그의 문장이 인정을 받고 있으며 또한 문장에 대한 담론 또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 이쯤 되면 기대감은 증폭된다. 인터넷 용어로 치면, 일명 ‘내공’을 전수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기대감은 하늘을 찌를 듯 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문장강화>의 첫 페이지를 들추어보았다. 그리고 내리 읽었다.
‘이것’이었다. 이태준의 <문장강화>는 이것이었다. 이것이 무엇인고? 연금술사들이 찾아 헤매는 ‘현자의 돌’이었다. 말 그대로 ‘강화’가 여기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 각설하고 어떤 내용으로 이루어있는지를 살펴보면, <문장강화>는 각종 문장을 작성하는 요령뿐 아니라 퇴고 요령과 문장을 쓰는 사람의 마음까지 문장에 관한 모든 것들을 다루고 있다.
‘어감 있게 쓰기’와 ‘담화와 문장을 구별하기’, ‘의음어와 의태어가 들어간 문장’ 등 문장을 작성하며 나타날 수 있는 모든 문제들이 있으니 참으로 ‘문장 백과사전 한국판’이라고 말해도 지나친 과장은 아니다. 문장의 예들이 풍부하다는 것도 장점인데 생각해보면 그 동안 논술참고서 같이 글 쓰는 비법을 알려준다고 큰 소리쳤던 것들이 <문장강화>에 비하면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꼴이었다. (논술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논술과 관련된 도서들이 수두룩하게, 급조되어 등장하고 있는데 그런 도서를 보기 전에 <문장강화>부터 보라고 적극 권하고 싶다.)
그러나 역시 <문장강화>에서 배울 수 있는 참으로 아름다운 가르침은 ‘정신세계’의 것이었다. 어제의 삶과 오늘의 삶이 다르듯이 어제의 문장과 오늘의 문장이 달라야 한다고 말하는 이태준의 ‘마음가짐’에 대한 일갈의 외침을 듣고 있노라면 이것이 진정 문장을 쓰는 이들에게 필요한 내공의 수련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렇다. 실상 ‘현자의 돌’도 그것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리라.
하루빨리 ‘절판’됐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고 그저 소수의 사람들만이 보기를 바라는 뜻에서 최대한 독자층을 제한하며 <문장강화>에서 얻은 감동을 가슴 속에 품어두려 한다.
문장에 힘을 실어보고 싶은 사람, 아름다운 문장을 써보고 싶은 사람, 문장 속에 의태어와 의성어를 어떻게 넣어야 적절한지 고민하는 사람, 문장을 써놓고 보면 누군가의 문장 같아서 남몰래 홀로 속 태우는 사람, 자녀가 작문에 약해서 고민하는데 어떤 책을 권해줘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는 사람, 품격 있는 문장을 써야 하는 사람, 품격 있는 문장을 쓰고 싶은 사람, 퇴고하는 과정이 힘겹게 느껴지는 사람, 좋은 글의 비결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 운문과 산문의 차이를 문장을 통해 알고 싶은 사람, 암시와 함축이 있는 문장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 담화와 문장을 제대로 구별하고 싶은 사람, 나만의 문장작법을 꿈꾸는 사람, 문장에서 유일어가 주는 매력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 나만의 기행문을 써보고 싶은 사람, 추도문을 써야 할 필요성이 있는 사람, 감상문을 특색 있게 써봐야겠다는 생각하는 사람, 감각 있는 문장미를 추구하려는 사람, 뻔한 퇴고 요령이 아니라 생동감 있게 퇴고하는 방법을 지켜보고 그로 인해 깨달음을 얻고 싶은 사람, 좋은 문장이 들어있다고 알려진 수필과 소설이 어떤 책인지 알고 싶은 사람, 자신의 문장이 조화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태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
이런 사람들만 보기를 바란다면 내가 속이 좁은 건가? 어쨌든 여기에 속하는 이들이라면 <문장강화>를 ‘현자의 돌’로 사용할 수 있을 터이다. 그리고 문장의 연금술사가 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터이다. 그러니 여기에 속하는 이들만 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