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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ㅣ 미래그림책 127
김기철 그림, 우현옥 글, 오선화 감수, 강병인 제목 글씨, 최영진 사진 촬영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16년 9월
평점 :
<수원화성>

3년전에 수원화성에 다녀온적이 있는데,
이렇게 책으로 수원화성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볼 수 있어서
그때 가서 봤던 기억을 다시 되새겨보게 되는 시간이였습니다.

<화성성역의궤>에 실린 화성전도를 시작으로
장안문, 화홍문, 동북각루, 동장대,동북공심돈
청룡문, 치성-북동치, 봉돈, 팔달문, 서남암문
서장대, 서북각루, 화성행궁, 화서문, 서북공심돈
북서포루를 그림과 함께 읽어볼 수 있었는데,
선명한 색으로 채워진 그림은 볼수록 감탄하게 되더라구요.

무거운 돌을 높은 곳까지 올려 쌓는 건 쉬운일이 아니어서
큰 돌을 올리는 걸 돕기 위해 '거중기'와 '녹로'를
만들어 '유형거'를 만들어 돌 운반을 도와
정성껏 쌓아 올린 돌 위에 인부의 이름을 새겨넣었습니다.

남양만과 서해안으로 연결되는 성문인 서문
화성의 서쪽 대문이라 하여 '화서문'이라고 합니다.
적이 공격하면 성문이 쉽게 뚫리는 것을 막기 위해
성문 앞을 한 겹 더 두른 옹성을 세웠습니다.

봉수대는 보통 산꼭대기나 성 밖에 두는데,
봉돈은 성안에 두었습니다.
긴급한 정보를 빨리 받기 위해 행궁에서
왕이 머무는 행궁에서
바로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수원화성은 조선의 제22대 임금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옮기면서 만든 성으로,
일반적으로 높은 곳에 성을 쌓는 것과 달리 화성은
평산성으로 계획도어 도성 안에 백성이 살고
왕의 행궁이 함께 있는 형태입니다.
수원화성을 만들면서 정조가
백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모든 노역에 임금을 지불했고,
기금은 왕실 비용을 아껴
모은 내탕금을 사용했다고 하니,
임금 노동으로 성을
축조한 것은 수원화성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수원화성이 완공되고 품은 뜻을 채 펼쳐보지도 못하고
4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만 정조.
정쟁에 휘말려 뒤주에 갇혀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를 섬기는
마음에서 시작하였지만, 그 밑에는 무엇보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던 정조.
예전에 수원화성에 갔을 때는
그냥 한번 둘러보고 왔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다시한번 꼭 수원화성에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시 갈때는,
<수원화성>책을 함께 가지고 가서, 그 의미를
짚어보며 보고 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