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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2015-3 책, 최문희의 '난설헌'
지난 2학기에 옆 반 선생님이 고전을 아이들과 읽고, 비형식 토론을 하신다고 해서 수업을 참관했다. 그날 토론한 책은 <홍길동전>이었다. 선생님이 여는 말로 허균의 누나가 누구인지 물으셨는데, 아이들이 ‘허난설헌’을 이야기했다. 이어 선생님은 이 소설을 쓰면서 스물일곱의 나이에 죽은 누나를 생각하지 않았겠냐고 했다. 허난설헌, 균의 누이, 사랑하는 누이라.. 어쩐지 관심이 생겼다. 그 순간 교과서의 지식이 내게 살아나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기말평가에 홍길동전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장을 발췌하여 출제했는데, 길동의 통곡하는 장면을 보며 허균이 신분제에 대해 어떤 마음이었을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기회가 되면 난설헌에 대해 알아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올 겨울, 강릉에서 행복수업선생님들과 심퍼줌을 했는데, 둘째 날 강릉탐방에서 허균과 허난설헌 생가 터에 세운 박물관에 다녀왔다. 동행한 강릉 선생님이 근무하는 학교 근처가 허초희의 외가라고 했다. 균의 호가 교산인데, 승천하지 못한 용이란 뜻이라 했다. 남매의 아버지 허엽의 가계도를 보니 그의 가정은 문인의 피가 흐르는 듯했다. 거기서 발견한 ‘난설헌’ 책을 유심히 봐두었다가 다녀와서 읽었다.
그미는 참 아름답고 올곧은 여인이었다. 조선이라는 갑갑한 비늘을 입고, 결혼 이후 한 순간도 자유롭지 못한 그미. 그 비늘 안에서 견디며 그 고매함을 잃지 않았다. 허둥대거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안달하거나 함부로 속상함을 꺼내어 풀어놓지도 않았다. 그미의 시는 고통 속에서 나온 진주였다. 남성과 신분이 중요한 사회, 그것은 누가 만든 것인가? 소수의 사람들이 만든 그 구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산다. 그것이 팔자려니, 운명이려니 하며 고통의 시대를 견디어 정신적인 무엇인가로 승화하는 것에 가치를 두며 살아간다.(이것이 혼불 문학상의 정신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잘못된 구조를 개혁하기보다는 이러한 정신을 무조건 강요하는 것도 같다.
하지만 안타깝기도 했다. 그미의 고고함은 현실을 껴안지 못한 것은 아닐까. 어차피 견디어야 할 일상이라면, 좀 더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따스하게 남편 성립을 품어주었더라면 그미의 일상이 조금은 행복하지 않았을까? “이제 나를 묶고 있던 사슬에서 풀렸다네. 그 사슬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시대적인 닫힘, 유교적인 사슬이 전부는 아니라네. 내 과도한 자아의식, 나를 휘감았던 자기애, 신동이라고 부추겼던 칭송에 대한 불편함이 내게는 하나의 오랏줄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네” 작가도 후기에 난설헌이 자신의 귓전에 이렇게 속삭였다고 밝혔다. 자신을 너무 사랑하면, 그 사랑이 너무 충만해 있으면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무너지고, 망가지기가 쉽지 않다. 잘한다, 잘한다 결과를 칭찬하고, 타고난 능력을 칭찬하면 실수하고, 실패할까 두려워 마음껏 모험하지 못한다.
책을 잡은 지 하루 만에 다 읽었다. 단어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는 마음으로 쓰지 않았을까? 황진이, 신사임당 소설도 오늘 주문했다. 이어서 읽어봐야지.
그미, '그녀'의 멋스러운 표현, 소설에서 주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