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뺑덕 ㅣ 창비청소년문학 61
배유안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평점 :
심청전은 내 어린시절에 특별한 경험을 안겨 준 책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가 되었을 때다. 계몽사에서 그림책으로 나온 심청전을 처음 읽었다.
그때 나는 퍼뜩 깨달았다. 심청의 일이 무슨 고리처럼 앞뒤가 맞물려 있다는 것을.
공양미 삼백석을 바쳐야 하는 그 일로 모든 것이 시작되었고, 결국 심청 아비의 눈을 뜨게 한 것은 그냥 공양미 삼백석이라는 쌀이 아니라 삼백석을 바쳐야 하는 일 때문에 시작되어서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그 일들이 일어남으로써 가능했다는 것을.
나는 전율했다. 이런 일이 있나, 싶었다. 그 순간 나는 아직 내가 발을 들여놓지 않은 세상의 비밀을 조금 엿본 셈이다.
나에게 특별한 책 심청전은 어찌 된 셈인지 많은 이들의 손에서 새로운 이야기로 태어난다.
심청전이 나에게만 특별한 책이 아닌가 보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뭔가 불편했다. 일인칭 화자인 뺑덕이 자기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어서 불편했다.
그런데 뺑덕 어머가 등장하면서부터 불편함이 사라졌다. 진짜 주인공은 뺑덕 어미였고, 작가가 에둘러서 보일 듯 말 듯 보여 주고 싶은 것이 뺑덕 어미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청전의 뺑덕 어미는 인정 없고, 욕심 많고, 못된 여자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누구의 마음 속에나 꽃 한 송이, 눈물 한 방울, 그리움 한 줌, 외로움 한 움큼은 들어 있는 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뺑덕 어미의 마음 속에도 있는 그것을 찾아서 주변 사람들의 마음 속을 더듬어 보고 싶은 예쁜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그 예쁜 마음이 나를 위로한다.
이 책에서 내 마음을 움직인 한 구절이 있다.
" 그때 어미가 심 봉사와 함께 있든 아니든, 심술맞고 우악스럽든 아니든 나는 어미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래서 어미 있는 아이가 될 것이다. 나는 담담해졌다. 아니, 든든해졌다."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져 연꽃이 되고 왕비가 되고 마침내 아비를 만나 아비의 눈을 뜨게 했던 것처럼 뺑덕은 집을 떠나 바다로 가고 온몸으로 바다를 겪고 또 온몸으로 삶을 겪으면서 마침내 어미를 만나 제 마음의 눈을 뜨는 순간이다.
아비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이 옛 시절의 효도였다면 내 마음의 눈을 뜨고, 어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게 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효가 아니겠는가.
내게도, 우리에게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할 심술맞고 우악스러운 삶이 있다. 어미를 인정하는 일은 삶을 인정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