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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이어 말한다 - 잃어버린 말을 되찾고 새로운 물결을 만드는 글쓰기, 말하기, 연대하기
이길보라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5월
평점 :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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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길보라의 해방의 서사는 현재 진행 중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감내해야 했고, 해방되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던 본인의 삶의 궤적을 따라 이길보라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더 나은 길을, 함께 나아가는 길을 모색한다. 이길보라도 앞선 누군가의 마이크를 이어 받아 말하기를 시작했고 또한 그녀가 자신의 말을 이어 다른 이가 자신의 마이크를 건네받기를 희망한다. 나에게는 나와 세상을 명료하게 해줄 더 많은 언어가 필요하고 더 많이 읽고 생각해 좋은 문장을 쓰고 싶다는 욕구를 들게 만들었다. 좋은 책이다. 정말.
🔖나보다 앞서간 이가 해온 말과 행동 위에 내가 서있다. 내가 하는 선언과 행동 위에 나중에 오는 이가 서게 될 것이다. 샌각하고 의문을 품고 용기를 내어 말하고 선언함으로써 우리는 지형을 바꿔나간다. 당신과 나의 말하기는 판을 바꾸고 뒤집는 일이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당신을 이어 말한다. -99쪽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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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만 여겨졌던 일에 질문을 던져 파장을 일으키고, 곁눈질로 바라보던 막연한 세상에 대해 말함으로써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책의 신봉자로서 21세기 현재 다뤄지고 있는 여성해방 서사에 대한 여러 픽션과 에세이, 논평을 읽어왔던 터라 그런 것들이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언어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장애해방 서사는 나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장애해방 서사는 나에게 조금은 머나먼 일처럼 느껴져왔고, 그들의 서사는 다큐멘터리, 인간극장, 영화 속에서 곁눈질로 바라보는 정도였다. 그들을 위한 언어는 나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뉴스 아래에 수화통역가를 주의 깊게 본 적이 없었고, 그들이 어느 날 그곳에 존재하지 않게 되더라도 아마 나는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나의 무관심한 이기심은 농인들의 말을 막고, 세상과 멀어지고, 고립되게 만든다는 것을 이제야 생각했다.그날부터 8시 뉴스 아래 아주 작게 동그란 화면안에 갇혀 수화를 하고 있는 수화 통역사들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 저들의 수화는 정확한 수화일까? 혹시 형식만 그럴듯한 가짜 수화는 아닐까? 조금 화면이 더 커질 수는 없는 걸까? 새로운 신조어, 단어가 많이 등장하는 뉴스에서 수화로 어디까지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걸까?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었다.
🔖답은 간단하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것, ‘나’가 ’너’가 되어볼 것, 그래보려고 노력해볼 것. 타인을 상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53쪽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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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모험하며 살아간다.’ 너무나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은 타인의 욕구를 욕망하고, 나 이외에 사람들을 곁눈질로 바라보며 살아왔다. 자신의 삶을 기록하거나 말할 수 있는 언어를 잃어버린지는 오래다. 한 번도 여행에 나서지 않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모험에 나설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의 방식으로 모험을 하는 것도 단계가 있는 것이다. 자신의 욕구와 삶, 불편함에 대해 말하고 싶다면 책을 읽고 이미 마이크를 쥐고 말하는 사람의 말에 들어볼 필요가 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방식을 잃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요즘. 그럼에도 자신의 말하기와 방식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 노력하는 여성들이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희망적이다.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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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누구의 목소리를 이어 말할 것인지. 우리가 당면한 어떤 문제를 선택하고 삶 안에 그것을 녹여내 목소리를 낼 것인지. 더 많은 마이크가 필요하다는 말은 공감한다. 약자에겐 더 많은 마이크가 필요하다. 강자에게 쥐어지는 수많은 마이크에 비해 너무나 작은 수의 마이크를 배분하고 나면 정말로 필요한 목소리를 못 듣고 지나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마이크에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자신만의 언어를 찾는 일도 무척이나 중요하다. 어느 날 하늘에서 좋은 문장과 말이 떨어지지 않듯이 언젠간 나에게 마이크가 쥐어질 그날을 상상하며 좋은 문장을 잃고 의미 있는 목소리를 더 많이 들으며, 나만의 방식으로 모험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