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이야기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
오비디우스 지음, 이윤기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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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디우스, 그의 상상력과 표현력은 내가 읽은 <변신 이야기>가 비록 이윤기에 의해 서사로만 남았지만 원래는 '시'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시인의 눈이 아니고서야 사물과 감정에 대한 표현에 있어 그 정도의 공감을 이끌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또한 이윤기라는 번역자에 의해서 다시금 번역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절감할 수 있었다.나는 잘못된 번역의 글을 읽을 때마다 상한 어금니를 새로 덧씌웠을 때 서걱거리던 느낌과도 같이 못내 불편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윤기의 번역을 통해 새로이 바라보는 <변신 이야기>는 오히려 번역의 문장에서 우리말의 새로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무엇보다 그가 신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신화를 학문의 대상으로 여기고 정의하고 해석하기보다는 시적인 메타포어로 여기고 명상하고 즐기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때문에 그는 신화를 '인문의 자연'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것처럼 나무신이 사는 안개 낀 숲, 금방이라도 여신과 무사이, 반인족과 요정들이 뛰어나와서 철벅이는 진흙늪과 수풀 사이를 누빌 것만 같은 이미지, 그 오래된 상상력의 원천.

이 신화적 세계에서는 유토피아에서처럼 무궁한 안녕이 없다. 인간은 재앙을 받고, 엇갈린 사랑이 비극을 낳고, 전쟁과 죽음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문학장르를 구분짓는 표현대로 이 신화의 세계는 투쟁이며 대결이다. 자아 내부의 투쟁과 갈등, 개인과 개인의 싸움, 자아와 세계의 대결. <변신 이야기> 속에서의 이 모든 갈등과 그것이 낳는 절망과 비극은 매력적이지만 그것만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그 이후의 가능성이다. 너무 완벽한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가능성이 이 신화 속에도 숨어 있다. 비극의 끝에 하늘의 별자리가 되거나, 인간에게 필요한 나무가 되거나 그것은 신들의 재앙을 받게 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일전에 나는 아라크네를 뽐내다 망신당한 처녀라고 생각했었지만, 실제로 그녀의 솜씨는 여신보다 못할 것이 없었고, 그녀는 인간으로서 신에 대한 도전을 서슴치 않았던 것이다.

<변신 이야기>의 가장 큰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제목 그대로 '몸 바꾸기'일 것이다. 이것은 자연의 온갖 사물과 인간의 감정에 인격을 부여함으로써 일어나는 것이다. 이 나무는 어떻게 생겨난 것이냐? 옛날에 어떤 아름다운 소녀가 신의 사랑을 피하다 그렇게 변했다는 식의 설명. 그것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으로 그치는 문제는 아닌 듯하다.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르네상스라는 유리창을 통해서만 바라보았다. 르네상스에서 인문의 부활을 알리는 뚜렷한 흔적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이 다시 활개를 펼치며 나타나게 되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중세와 근대 사이 시대에서 신화와 신들이 다시 재서술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 로마 시대에 신화는 인간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소박하면서도 무한한 탐구의 결과가 아닌가 한다. 자연에 깃들어 있는 혼이 자신과 다를바 없다고 받아들임으로써 인간은 자연에게 처음으로 손을 내밀게 된 것이다. 비록 그것이 후에 가위손으로 변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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