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범우고전선 1
토마스 모어 지음 / 범우사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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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의 가사를 들어보면 '하느님의 계획 아래 자신이 존재한다'는 내용의 노래가 많다. 모어도 <유토피아>에서 철저한 계획으로 짜여진 제도 아래 사람들을 살게 하려는 의도가 짙다. 그리하여 모어는 상당히 구체적으로 유토피아를 그려냈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상징적으로 느껴지는 역설은 무엇일까?

그러나 <유토피아>는 모어가 살던 산업혁명 초기의 영국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사회생활의 최선의 상태에 대해서의, 그리고 유토피아라고 불리는 새로운 섬에 대해서의 유익하고 즐거운 저작>이라는 원제에서도 드러나듯이, 매우 유쾌한 책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모어의 조어법인데, 유토피아(어디에도 없는 곳)라는 말도 마찬가지이지만 폴릴레리타에(전혀 무의미하다), 아니드루스 강(물없는 강) 등과 같은, 모어가 만들어낸 말들이 유토피아 곳곳에 숨어 있는걸 보면서 나는 혹시 이 <유토피아>가 그 당시의 풍자코미디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유토피아를 계획했다는 유토포스라는 인물은 어떻게 보면 플라톤의 철인왕과 흡사한 면이 있다. 지혜롭고, 철저한 계획을 세워서 나라를 만들었으며, 교육을 통해서 유토피아인들을 길러낸다. 그런데 고쳐 말하면 유토포스는 독재자였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의 남자친구와 함께 독재자에 대해서 논쟁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녀석의 말은, 아주 도덕적이고, 생각도 깊고, 올바른 독재자가 나라가 확 바꾸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라가 바르게 되면 민주주의도 정착시키고 해서 자기는 권력에서 깨끗이 물러나면 된다나. 나는 이 말에 찬성을 하지 않았지만, 사실 그를 설득시킬만한 제대로 된 논거를 대지도 못했다. 그런데 모어 역시 이상적인 독재자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과연 이상적인 독재자는 이상적일 수 있을까?

그리고 제 1권의 초기에 나왔던 라파엘과 영국변호사 간의 논쟁에서 쟁점으로 불거진 것들에 대해서 특히 주목을 해 본다. 산업혁명 당시의 영국은 자본주의의 발전 양상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었고, 부자가 한없이 부자가 되는 한편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거지 도둑이 되는 사회였고 '도둑이 들끓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젯거리로 떠올랐다. 논쟁의 시초는 절도죄를 준엄하게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이름을 모르는 영국 변호사는 열렬히 찬성하였으며, 라파엘은 그렇다고 해서 도둑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는데, 라파엘(혹은 모어)과 변호사 사이에서의 이에 관한 두 가지 쟁점은 '도둑은 어떻게 근절될 수 있는가' 와 '가난한 사람과 도둑은 왜 생기는가' 하는 것이었다.

'도둑은 왜 생기는가'에 대해 라파엘은 변호사가 말한 '도둑은 유능한 군인이 되고, 군인은 모험적인 도둑이 된다'는 것에도 찬성하지만, 영국에서는 조금 더 특수한 경우가 있다고 설명한다. '아주 조금밖에 먹지 않는 것이 보통인 이 유순한 짐승이 이제는 사나운 식욕을 갖게 되어 사람까지 먹어치우게 된 것 같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리고 '비참한 빈곤에 따르는 가장 부조리하고 사치스러운 취미'가 다른 한 축을 이룬다. 두 번째로 '도둑은 어떻게 근절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변호사는 조그만 절도죄라도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웠고, 라파엘(모어)은 '아무리 많은 재산이라도 인간의 생명과 맞먹을 수는 없다.'며 폴릴레리타에라는 곳에서의 방식을 예로 든다.

이 두 가지 쟁점은 그대로 모어의 유토피아에 대한 관점을 드러냄과 동시에 유토피아/디스토피아에 대한 우리의 관심에도 적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한가지가 디스토피아는 어떻게 생겨나는가? 혹은 왜 생기는가? 에 대한 질문이다. 모어의 경우는 디스토피아가 생겨나는 원인을 아주 예리한 현실적 인식에서도 간파했지만, 도덕적인 기준 역시도 함께 들이댄다. 두 번째는 디스토피아는 어떻게 사라질 수 있는가? 에 대한 것이다. 모어는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서 이상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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