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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 삶, 사랑, 관계에 닿기 위한 자폐인 과학자의 인간 탐구기
카밀라 팡 지음, 김보은 옮김 / 푸른숲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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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를 뚫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하면 안돼. 그렇게 하면 운동이 안 되지!” 새벽달리기, 유턴을 하는 목적지에 도착을 하면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휴대폰을 꺼내어 인증사진을 찍는다. 그 1분도 안 되는 짧은 순간, 멈춰선 나에게 그렇게 하면 운동이 안 된다는잔소리같은 소리가 들렸다. 반응하지 않고 바로 돌아서서 뛰었다.
그 소리는 점점 옅어졌지만 머릿속에는 그 말들이 뒤엉켜 다양한 의견들을 내어놓았다. ‘뭐야,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런 잔소리를 하다니.’, ‘본인은 설렁설렁 걸어왔으면서 나더러 잔소리라니.’, ‘간섭과 중첩이야. 나의 잔잔한 물결에 누군가 작은 돌을 던져 간섭이 생겼고, 중첩으로 이어졌어.’ ‘간섭과 중첩? 좋은데? 나중에 글쓸 때 써야지.’
그렇다. 결국 그 짧은 순간은 나에게 남겨져 이렇게 글의 첫머리까지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자극이 흘러가는 방향은 순전히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 이것은 내가 바라던 흐름인가? 혹은 비슷한 자극이 왔을 때 나는 비슷한 반응을 할까?
우리는 사회적동물로 수많은 관계의 시간 속을 살아간다. 그 관계는 중첩과 간섭을 만들어내고, 그 중첩과 간섭은 우리의 삶에 꽤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사용할지에 따라 우리의 삶은 달라진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은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과학자가 적은 인간 탐구기로, 우리의 복잡한 관계들을 과학의 여러법칙을 빌려 명료하게 설명해준다. 8살 때 자폐스펙트럼을, 26살에 ADHD를 진단받은 저자는 자신의 상황을 특혜로 여기며 세상을 바라본다.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나만의 세상, 즉 스스로 자유롭게 규칙을 정할 수 있는 세상에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졌다는 것은 내가 세상을 다르게, 편견 없이 본다는 뜻이었다.
p13
이러한 시선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관계들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이 사랑하는 과학과 수학에서 그 답을 찾아낸다. 머신러닝을 통해 결정을 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단백질들을 인간의 MBTI로 나눠 설명을 해주며, 완벽함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을 열역학의 엔트로피를 통해 설명한다. 두려움을 빛에 비유하여 스스로가 프리즘을 되길 권하고, 네트워크이론을 통해 목표를 설정하는 방법을 말한다. 이 외에도 꽤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이 책을 다 읽고 새벽달리기를 하며 잔소리 아저씨를 만났던 때를 다시 떠올려봤다. 그 때의 기억은 나에게 어떻게 남을까?
우리가 기억하기로 선택한 것은 삶에서 마주치는 온갖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할지 결정하는 데 중요한 정보다. 인공지능에서 영감을 받은 올바른 비틀기를 통해, 우리는 기억을 잠재적인 무거운 짐 덩어리에서 가장 중요한 힘의 근원으로 바꿀 수 있다.
p266
어디에 초점을 두고 기억하느냐에 따라 같은 경험도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나는 그날의 기억을 쇼펜하우어의 명언을 떠올리며 기억하기로 했다.
뜻밖에 아주 야비하고 어이없는 일을 당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짜증 내지 마라. 그냥 지식이 하나 늘었다고 생각하라. 인간의 성격을 공부해가던 중에 고려해야 할 요소가 새로 하나 나타난 것뿐이다. 우연히 아주 특이한 광물 표본을 손에 넣은 광물학자와 같은 태도를 취하라.
-쇼펜하우어
그리고 이왕이면 그 표본을 잘 활용해 글감으로 사용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공지능으로 치면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처리할지 러닝이 된 것이다.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나는 이 기억을 꺼내어 적용할 것이며, 쇼펜하우어의 명언처럼 기분 나빠하기 보다 즐거워 할 수도 있겠다.
과학자라면 누구나 오류나 나쁜 결과는 없으며 오직 더 나은 학습을 위한 데이터만 있다고 말할 것이다.
p273
과학자는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증명한다. 그 과정에서의 실패는 가설을 수정해야 함을 알려주는 반가운 이정표다. 우리도 이와 같은 시선으로 삶과 관계를 바라본다면 어떨까? 스스로 주도권을 가지고 자신의 가설을 증명해가는 삶을 살아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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