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센디어리스
권오경 지음, 김지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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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휴거’의 정확한 뜻도 모른 채, 두려움에 화장실에서 혼자 기도한 적이 있다. “우리 가족 모두 무사하게 해주세요!” 그 어린 아이가 기도할 정도라면 더 많은 이들이 두려워했으리라.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이런 공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교묘하게 스며들어, 똬리를 튼 뱀처럼 기회를 엿보다 불쑥 고개를 내민다. 가장 연약한 순간을 기다렸다 빠르고 강력하게 잠식한다.
다행히 그때 걱정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광신도’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아, 앞에 하나 더 붙는 단어 ‘사이비’도 있다. 조금은 무서운 그 단어는 살면서 “도를 아십니까?”나 그 곳에 따라갔다 겨우 도망쳤다는 한 선배의 이야기로 종종 다시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소설 <인센디어리스>에는 잊었던 그 공포의 시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신앙을 잃은 윌, 의미를 찾는 피비, 종교를 만든 존이 이야기의 큰 축을 이루며 각자의 명분으로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일들이 진행된다.

손에 잡힐 듯한 묘사는 내가 윌과 피비가 있는 침실 어딘가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고, 관점이 바뀌며 진행되는 사건의 흐름은 긴장감을 유지하며 끝까지 책을 놓지 않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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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만 내가 더 자기처럼 행동하기를 원하는 듯했다. 동료들의 등을 철썩 치고, 농담을 던지고, 쾌활하게 굴라고. 때로 변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그게 다다. 이러저러한 모양을 갖춘 나처럼 되어라.
p86


나는 고통을 먹었어요. 눈물을 마셨고요. 충분히 섭취하면 내 고통과 눈물을 담을 자리가 없어질 것 같았거든요.
p106


나는 무척 자주 생각해왔어요. 그리움에는 그 대상을 찾을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요.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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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다소 어둡고 이질적인 스토리였지만 조금만 틀어보면, 농담과 강도의 차이일뿐 우리의 일상과 다를 바 없었다.

예전 <알쓸신잡2>에서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가 갑각류의 성장과 사람의 성장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갑각류는 껍질이 있어서 겉은 딱딱하지만, 허물을 벗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은 아주 말랑말랑해진다. 껍질을 탈피한 직후의 갑각류는 아주 약한데 갑각류가 성장하는 때는 가장 약해져 있는 바로 그 순간이라는 것이다. 사람도 죽을 것 같고 잡혀 먹을 것 같고, 너무 약해서 스치기만 해도 상처받을 수 있는 그 순간에 바로 성장의 시점이라 말한다.

가장 흔들릴 때 우리는 무언가에 기대고 싶어진다. 그때 그 무언가가 무엇이냐에 따라 다음이 달라진다. 피비가 기댔던 그 무엇이 다른 것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가장 연약할 때 우리 모두가 지혜롭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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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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