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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의 사물들
김선우 지음 / 눌와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올 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 더위가 무섭게 기승을 부리던 초입에 그녀를 만났다.
그녀를 만났다, 라는 말이 더 적당할까? 책을 읽게 되었다는 말보다는 이 책을 읽는 일은
'그녀를 만났다'라는 말이 훨씬 더 부합되리라.
여름 내내 책 가득히 짤랑거리는 요령소리를 내며 그녀가 내게 말을 걸었고
이 책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며 그 소리에 서늘하고도 맑은 정신의 공명을 얻었다.
깊은 성찰의 시간을 건너온 김선우 시인의 글을 읽으며...
그 무렵, 7월의 초순 어느 날 좋은 주말쯤으로 기억된다.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경복궁 나들이 길에서 수련이 막 피어나고 있는 향원정을 거닐던 기억이 난다.
연못 한가운데에 아담하게 빛바랜 얼굴로 주인없이 섬처럼 서 있는 향원정의 그림자가
연못 물에 비치어 가늘게 흔들렸다. 눈으로 보이는 향원정보다도 하늘과 구름과 물 속 깊이
뿌리를 내린 여러 식물들과 물오리의 파닥임과 길게 머리를 드리운 버드나무의 찰랑거림까지
모두가 한데 어우러진 새로운 향원정이 거기에 있었다.
여름 날의 나른함에 딱 어울리는 그런 향원정.
김선우 시인이 책에서도 밝혔듯이, 이 책에 나오는 사물 하나하나는 제 모습의 진정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또한 시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물건들이다.
<투영>한다는 것. 그것은 그 사물의 본질을 그대로 담아내면서도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주변의 생명까지 아울러 새로운 사물이 되는 것. 이 책의 사물들은 시인의 손길로 단지 사물이 아닌
면벽하는 수도승이 되기도 하고, 어머니의 애뜻하고 항상 분주한 손이 되기도 한다.
여름 내내 이 책을 읽으며 계절을 건넜다. 한편 한편 아껴 읽으며. 천천히 홀로 여행하듯이.
그리고 내 방에 너저분하게 흩어진 사물들처럼 잘 추슬러지지 않고, 깊게 숨을 내쉬지 않던 생활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하는 듯했다.
마음에 폭풍이 일어나는 날이면, 포구의 어느 방에 옹송거리고 누워서 마음을 보듬을 수 있게
해주었던 김선우 시인. 또다시 마음을 투영하여 가만히 바라볼 수 있게 가만히 속삭여주는 책을
만난 덕택이다.
책을 읽으며 김선우 시인과 보낸 여름, 다가오는 가을이 환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