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왕복서간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1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2년 5월
평점 :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의 일관된 특징은 화자를 여럿 둠으로써 한 사건에 대해서 각자의 입장을 다각도로 조명한다는 점이다. 데뷔작 고백에서부터 속죄, 소녀, 야행관람차, 그리고 이번 작품 왕복서간과 이후 출간된 N을 위하여까지 전부 그렇다.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대단한 화젯거리가 되었던 고백에서 시작해서, 속죄나 소녀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고백의 마이너 카피라는 평가가 많았다. 고백은 확실히 대단한 임팩트가 있는 작품이었다. "내 딸을 죽인 사람은 이 중에 있습니다" 라는 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차갑고 냉정한 복수. 이 무렵의 미나토 가나에의 글에는 독기가 있었다. 누군가의 무관심, 혹은 아주 사소한 악의가 타인의 인생을 흔드는 과정을 다중화자를 통해 보여준다. 자신의 장에서는 실컷 변명을 하고 스스로를 미화하지만 그 바로 다음 장에서, 타인의 입을 통해 그 위선과 치부를 낱낱이 까발리는 과정은... 확실히 카타르시스가 있다면 있지만 그 지나친 독기에 가슴이 갑갑하게 느껴지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왕복 서간은 편지라는 소재를 통한 다중 화자를 보여주는 것은 이전 작품과 같으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퀄리아라는 말이 있다. 감각질, 사람이 인식하는 세계는 결코 타인과 100% 동일할 수 없다. 전 작품에서 미나토 가나에는 이 인식의 차이를 이용해 사람의 악의와 증오를 보여주었다. 왕복서간에서는 그 반대로, 사랑과 애정과 헌신이 있었다. 심각한 애증이 얽힌 사건인 것만 같지만 사실 알고보면 의외로 별거 아닌 진실과, 알기 어려운 배려와 귀엽기까지 한 뒷공작, 그리고 애정과 헌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작중 인물들은 오해와 엇갈림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좋은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