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보다 Vol. 3 빛 SF 보다 3
단요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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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SF 소설집에 참여하신 여섯 분의 작가님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빛’이라는 주제에 접근하시는 것이 재밌는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빛’의 과학적 정의는 자기장과 전기장이 수직으로 전파되는 전자기파다. 이 빛 덕분에 우리는 사물을 볼 수 있고, 라디오를 들을 수 있고, 신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져볼까? 밤하늘을 바라볼 때 우리가 마주하는 반짝이는 별들. 그 별들도 빛이 있기 때문에 볼 수 있다. 심지어 그 빛은 몇천년 전의 빛, 몇억년 전의 빛이다. 이렇듯 ‘빛’은 그 주제 만으로도 무척 흥미롭다. 그리고 이를 주제로 다양하게 빚어지는 6개의 이야기는 그것을 더 흥미롭게 만든다.

먼저, 단요 작가님의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는 마치 옛날 이야기를 전해듣는 것 같은 생생함으로 ‘빛’의 일부 파장인 가시광선 외의 빛을 볼 수 있던 인류종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류는 가시광선 영역대의 빛만을 인지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외 파장의 빛을 인지하는 인류종이 있었다면 그들의 삶은, 역사는 어땠을까? 그 질문에 독창적이고 흥미진진한 대답을 하는 것이 이 이야기의 내용이라 할 수 있겠다. 나에게는 이 책에서 이 이야기의 아이디어가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볼 수 ‘없는’ 빛을 ‘보는’ 사람들이라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 그리고 오늘날의 과학기술이 가능케 해준 인류 시야의 확장에 대해서도 동시에 생각하게 되었다. 가시광선 영역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매우 한정적이라서, 우리는 이제 적외선, 라디오파, X선 등 다양한 파장대의 빛을 수용할 수 있는 기기를 만들고 이를 사용하면서 훨씬 많은 양의 정보를 이용하고 있다. 그렇게보면 지금의 인류종도 볼 수 없는 빛을 보는 종이 된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역사 속 볼 수 없는 빛을 보던 사람들과, 지금의 우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서 가장 좋았던 글이라 생각한다.

서이제 작가님의 <<굴절과 반사>>는 깊은 해저를 배경으로 한다. 해저에는 빛이 거의 들지 않아 어두컴컴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우리가 흔히 바다와 빛, 하면 생각하는 윤슬이 반짝이고 쨍쨍 내리쬐는 빛에 넘실거리는 파도의 모습은 단지 몇미터면 끝이 난다. 그 아래는 그야말로 암흑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빛이 주는 감동이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스포일러일 수 있기에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아도… 컴컴한 해저에서도 젤 어둡고 깊은 교도소에서 근무하던 주인공이 넘실거리며 빛을 아름답게 반사시키는 수면을, 물결을 처음 만났을 때. 그때 내가 다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빛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에 경탄했다. 가장 아름다웠던 것은 71페이지의 문장 배열이다. 책에서 확인해보시길!!

<<시계탑>>을 쓰신 이희영 작가님의 아이디어도 굉장히 새롭다고 느꼈다. 물리적인 의미의 빛이 아니라 생물학적 의미로 빛에 접근하신 점이 인상깊었다. 사람에게는 생체시계라는 것이 있고, 그 시계에 맞춰 삶을 살아갈 때 신체와 정신이 제기능을 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은 다들 한 번 즈음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생체시계에 근본적으로 관여하는 것이 바로 빛이다. 이 이야기는 이를 바탕으로 하여 전개된다. 생체시계의 흐름을 따르지 않을 때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것을 풍부한 상상력과 디스토피아적 묘사로 그려내신 점이 정말 독창적이라고 느꼈다. 생각해보면, 과거 인류는 해가 지면 자고 해가 뜨면 일어나 생활하는 삶을 하며 진화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삶에 치여 생체시계를 자꾸만 놓치고 있는 것 같다. 경각심과 동시에 빛의 흐름이라는 것, 생체의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다.

<<라블레 윤의 마지막 영화에 대한 소고>>는… 제일 어려웠다. 개념적으로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흐름 전체가 조금 따라가기 버거운 느낌? 그렇다고 글이 별로였다는게 아니다. 제목에서 보이다시피, 이 글은 라블레 윤이라는 영화감독의 유작에 대한 해석과 함께 그의 삶에 대해 마치 논문처럼 풀어쓴 설명문의 소설이다. 비평같달까… 비평 형태의 글에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어렵게 느꼈던 것 같다. 그와는 별개로 이 이야기 또한 빛에 대한 독특한 발상을 포함한다. 라블레 윤이라는 캐릭터가 빛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설명을 읽다보면 마치 실제 존재하는 영화 한 편을 감상한 것 같이, 그 영화에 나오는 빛을 상상하게되고 그것은 강렬하게 머리에 기억된다. 더군더나 그의 영화 중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 ‘시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시간’도 빛과 때려야 땔 수 없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간이 포함된 개념인 ‘속도’를 이야기함으로서 빛과 연관된다. 굉장히 물리학적인 연관성이다. 그리고 나는 물리학을 공부하는 학생이기에… 라블레 윤이 영화에서 시간을 다루었다는 점도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소설이 아니라, 진짜 존재하는 감독의 진짜 존재하는 영화를 본 것만 같은 기분으로 글을 읽었다.

<<누구에게나 신속한 정의>>는 처음에 ‘이게 왜 빛에 대한 이야기지?’하고 생각했다. 근데 과학적 의미의 빛 말고도, 빛은 종종 문학적 의미에서 구원이나 혁신로 비유 된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여기에 등장하는 신속한 정의는 그런 의미에서 빛이라고 생각한다. 신속한 정의의 등장으로 사회의 모습이 이전과 매우 다르게 변화하고, 세계를 바꾸었다는 점이 그렇다. 원래는 소수의 사람들만 사유하고 누리던 것들이 신속한 정의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열리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세상의 체계를 바꾸었다면 그것이 혁명이고 빛 아닐까? 장강명 작가님이 해석하신 빛. 어떠한 사회적 혁신을 기점으로 변화한 사회와 그 미래에 대해 풀어내는 이야기가 정말 있을법한 내용이라 재밌게 읽었다.

마지막은 위래 작가님의 <<춘우삭래>>이다. 젤 물리학적인 이야기였고, 그래서 술술 읽었다. 빛은 옛날부터 어떤 신호를 전달하는 방법으로도 쓰였다. 처음에는 불을 이용한 빛으로 (봉화라던가), 램프를 이용한 암호의 전달 (모스 부호 같은 것들), 그리고 지금은 무선 통신 기술에 쓰인다. 이 이야기의 시작도 변광성 하나가 보내온 빛 신호의 관측에서 시작된다. 그 빛에서 시작된 인류의 오랜 시간을 걸친 우주로의 진출과 여정, 그 과정에서 진화하고 변화하는 인류종과 사회 모습, 사상에 대한 글이다. 우주에서 빛을 내는 천체는 다양하다. 흔히 알고 있는 항성, 변광성, 블랙홀 주변의 강착 원반 등… 그 곳들을 종횡무진하며 벌어지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광활한 이야기가 날 강렬히 빨려들게 했다.

‘빛’이라는 하나의 단어가 이렇게 많은 방법으로 해석될 수 있을 줄은 정말… 읽으면서 작가님들의 아이디어에, 상상력에 감탄하기를 반복했다. 빛은 어디에나 존재하기에 그 존재의 무게감을 우리는 종종 잊는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마주한 여름의 이글거리는 태양빛은 왜인지 조금 다르게 느껴져서 소름이 돋았다. 역시 이번 SF 보다 시리즈도 믿고 읽을 만한 책이다. 빛이 작렬하는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읽어보면 정말 좋을 책인 듯하다. 왕추천!

이 글은 문학과 지성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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