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에서 품고 있던 궁금증이 풀려나가자 팽팽했던 긴장도, 에너지 소모도 줄어든다. 대신 편안하게 한 장 한 장 넘기며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는 여유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단, 현실과 비현실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만큼, 미스터리 한 자락 쯤은 남겨두어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굳이 친절하게 다 설명하지 않고 독자에게 툭 던지면서 '맘대로 상상해보라'고 말이다.이전 작품보다 작가의 수다가 조금은 길다는 것은,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만큼 이 작품에 작가의 애정이 크거나, 독자들에게 더 많이 전하고 싶다는 의지라고 이해하고 싶다.
하루키 씨가 좋아하는, 혹은 글에 등장시키기 즐겨하는 요소들이 이 작품에서도 반복된다는 점은 읽기에 큰 방해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들이 여기서는 긴장감을 풀어주는 일종의 안전장치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작가가 이 이야기를 창조하면서 지나온, 험난하고 아찔한 상상의 세계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꽤 애를 써야만 했다. 그 과정은 모른척 하고, 그저 완성된 창착물만 즐기다가 가는 편이 나을 거라고 기사단장이 내 귓가에 속삭이는 듯 했다. 하지만 그 경계가 안개가 낀 듯 애매모호하고 눈만 살짝 돌리면 넘어갈 정도라서, 1권을 읽는 내내 집중하고 긴장했다. 어쩌면 그게 작가가 의도한 바일지도 모르나, 너무 깊숙이 파고드는 건, 적어도 이 작품에서는 그다지 이롭지 못하다. 컴컴한 구덩이 속에 갇혀서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매우 힘겨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목이 낯설고 호기심을 끄는데다가 유명 만화가의 그림이라 주저없이 구매했다. 어린 풍이와 아리가 자연보다 늘 우위에 있으려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꽉 꼬집어준다. 아쉬운 건 주제 전달을 위해 각 요소들을 그럴듯하게 끼워맞춘 점이다. 작가의 톡톡 튀는 개성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