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쇠망사 11
Edward Gibbon / 대광서림 / 199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시절 읽었던 E.P 톰슨의 <<영국노동계급의형성>>에서 '차티스트 운동이 읽어나기 전의 영국에서 앞으로 노동계급을 형성하게 될 근로자들 사이에서 사회적 비판의식과 교양을 기르기 위한 교과서로써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가 활용되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난 톰슨의 저서를 읽기 수 년 전... 대학 도전에 실패하고 방황하던 시절 서점 한 켠에 있던 기번의 저서를 선택했던 순간을 절대 잊을 수 없다. 그 선택은 앞으로 이어지게 될 서양을 이해하게 될 자양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데로 손더스의 <<로마제국쇠망사 발췌본>>을 읽는 순간 바로 이것이 서양의 육중한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임을 알았다. 결국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11권을 읽게 되었다. 기번의 지적인 필치에 감명을 받은 그 때부터 장장 4년에 걸친 로마제국 읽기가 시작된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처음 보던 때에 쇠망사는 8권까지 출판되어 있었다. 8권을 다 읽고 서점에 가서 다음 9권을 찾았지만 춢판되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9권은 군을 제대하고 나서  두어 달이 지난 뒤에야 출판되었다(대학에 실패하고 군대 가기 전 몇 달간 쇠망사를 읽었었다. 그러니 9, 10, 11권이 나오기를 군 26개월과 군에 가기 전인 1달, 제대하고 나서 2달 총 29개월을 기다렸다). 9, 10, 11권이 동시에 나와 있던 것을 보던 날 난 날듯이 기뻤다. 29개월간 기다린 결과 만났던 책... 하지만 난 그 동안 군생활 덕분으로 독서력은 상당히 낮아져 있었기 때문에 9권을 읽을 수가 없었다. 대학을 재차 도전하여 그 해에 나름 성공을 해서, 다행히도 1권부터 다시 읽을 수 있었고 11권을 마친 그 날 난 장장 4년 동안 로마제국 역사와 아니 에드워드 기번이란 걸출한 재담꾼을 스승삼아 지내왔음을 알았다.

<<로마제국쇠망사>>는 서양 역사로의 행보가 시작되는 발판이 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욱 귀중한 것은 서양 고전 문학(세계문학)으로의 길도 열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쇠망사는 '고전'은 딱딱한 책이라는 나의 생각을 없애버렸다. 쇠망사에 등장하는 고대 인물들의 이름과 행적이 너무나 생소한 나에게 그들에 대해 알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 일으켰고, 그 결과 호메로스의 작품과 플루타르코스의 저작을 읽게 인도했다. 이 두 저자의 저작은 이후에 베르길리우스, 오비디우스와 아폴로니우스 로디우스의 저작을 읽게끔 인도했다. 또한 역사적 관심도 생겨 헤로도투스와 투키디데스의 저작을 읽었으며, 성직자인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도 읽게 되었다.

또한 7권부터 등장하는 이슬람제국에 관한 역사와 비잔티움 제국에 대한 내용은 우선 아민 말루프의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문학으로 타리크 알리의 <<술탄 살라딘>>을 읽게 되어 나름 균형잡힌 역사적 안목을 가지려 하였다. 또한 10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비잔티움제국에 대한 기번의 기술은 옥의 티로서 나름 편견을 낳았다고 보았다. ...결국 최근에 와서야 비잔티움 제국의 오명을 벗게 해준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존 노리치의 <<비잔티움 연대기 전3권>>이 그것이다. 또한 11권에 약간 맛보게 해 준 근대 서양의 탄생은 이후 G.F 영의 <<메디치>>, 로베르토 라돌피의 <<마키아벨리 평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등으로 이어졌으며, 르네상스의 역사를 알고 싶은 마음으로 야곱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로 이어졌다.

과거 민주주의 역사를 쌓아 나가던 19세기 영국 노동자층의 교양적 교과서로 활용되었던 기번의 저서가 나에게 서양의 문화로 들어가는 교과서가 되어 주었다. 그 교과서의 힘이 나로 하여금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들을 읽는 바탕이 되어 주었고, 조지프 캠벨의 신화학을 읽게 해 주었고, 미셸 푸코의 저작을 읽게끔 했으며, 칼 구스타프 융의 기본 저작집을 읽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대학에 실패하여 낙담해 있던 나에게 책을 읽는 능력을 깨우게 하여 각종 참고서와 문제집에서 핵심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을 길러주었다. ...기번의 저서는 내 일생의 소중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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