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결국 이기적인 본성을 벗어날 수 없는 존재가 아닐까?', '이렇게 발버둥 쳐봤자 결국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뿐인데 선하게 사는 것이 대체 무슨 소용일까?' 하는 차가운 허무주의에 빠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바로 그 허무주의의 정중앙, 인간 존재의 가장 비참한 밑바닥으로 우리를 끌고 들어갑니다.
이 방대한 소설 속에서 저를 가장 큰 충격으로 몰아넣은 것은 단연 '조시마 장로의 시신 부패 사건'입니다. 극 중 조시마 장로는 살아있는 성자로 추앙받는 인물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의 제자인 순결한 알료샤까지도, 신과 가장 맞닿아 있던 장로가 세상을 떠나면 당연히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성자의 시신에서는 썩은 내 대신 향기로운 냄새가 날 것이라는 맹목적이고 달콤한 기대였죠.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도 가혹했습니다. 장로가 숨을 거두자마자, 일반인들보다도 훨씬 더 빠르고 지독하게 시체 썩는 냄새가 온 수도원에 진동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 묘사를 읽으며 둔기로 머리를 맞은 듯한 전율을 느꼈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끔찍한 악취를 통해 우리에게 인간의 적나라한 한계를 선고합니다. 아무리 영적으로 위대하고 명망 높은 성자라 할지라도, 인간은 결국 저주받은 육신을 입고 태어나 죽음 앞에서는 어김없이 흉측하게 부패해 가는 한낱 시신의 신세라는 뼈아픈 진실 말입니다. 시신의 부패는 세상 종교가 우리가 바라는 방식의 구원이 '물리적 기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인간 존재 자체가 철저히 유한하고 절망적인 껍데기에 갇혀 있다는 점을 시각적이고 후각적으로 증명하는 무서운 은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