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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은 붉은 구렁을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올해 들어 한 작가의 작품을 많이 접하게 된다. 바로 '온다 리쿠'이다.
정확히는 작년 말에 우연히 읽게 된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시작으로 삼월 연작 시리즈와 그 외의 작품들을 두루 읽게 된 것이다. 그 이후 그녀의 많은 작품을 접했지만 '온다 리쿠' 하면 여전히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다. 온다리쿠의 작품 중 제일 먼저 접한 탓도 있겠지만 옮긴이의 말에도 나오 듯이 왠지 온다리쿠 작품의 원점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삼월을 발전시킨 연작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연작이 아니라도 온다리쿠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뻗쳐나가는 줄기의 한 가운데 삼월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우리가 읽은, 혹은 읽고 있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바깥쪽 『삼월』이라고 해서 「장」으로 구분되어 있고 각 장에 등장하는 책, 안쪽 《삼월》은 〈부〉로 구분되어 있다. 『삼월』은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된 소설이며 각 장은 의문의 책 《삼월》 을 둘러싼 이야기이다.
제1장 기다리는 사람들'에서는 이른 봄, 독서가 취미라는 이유로 다니는 회사의 회장이 주체하는 '봄의 다과회'에 초대받아 회장의 별장에 2박 3일간 머물게 되는 사메시마 고이치의 이야기이다.
회장의 별장에는 회장을 비롯하여 회장의 세 친구가 기다리고 있는데 그들 모두는 미스테리 마니아로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며 회장의 친구가 6년 전 죽기 전에 남긴 다잉 메세지를 토대로 의문투성이인 책 《삼월》을 찾고 있다. 사가판으로 200부를 제작해 지인이나 믿을만한 사람에게만 배포하고 어찌된 이유에서 인지 곧바로 절반가량을 회수했다는 작가를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책. 사본을 만들지 아니하며 남에게 양도하지 않으며 친구에게 빌려줄 경우 한 사람에게 단 하루만 빌려줄 수 있다는 책. 거풍이라도 해 책을 찾으면 되련만 그러면 멋대가리가 없다느니, 수수께끼의 책을 찾아 2박 3일 사색의 저녁을 펼치는데 유언의 가치가 있다느니 하며 회장은 매년 사원 하나씩을 뽑아 다과회에 초대해 책을 찾고 있다.
제2장 '이즈모 야상곡'은 의문의 수수께끼 책 《삼월》의 작가를 찾아 장마가 시작 된 6월 중순 이즈모 행 열차에 오르는 편집자 도가키 다카코와 아카네의 이야기이다. 편집분야는 다르지만 미스터리 팬이라는 공통점으로 친해지게 된 두 사람이 우연한 계기로 책의 작가를 찾아 여행을 떠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제3장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는 11월 인구 15만명이 안되는 성 밑 도시 시가지에서도 높은 곳에 있는 성터 공원 낭떠러지 밑에 소녀 두 명이 죽은 채로 발견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소녀들의 신원은 시노다 미사오와 하야시 쇼코. 마사오의 과외 선생을 했었던 노가미 나오코는 오랜만에 들른 집에서 미사오의 죽음에 대해 듣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앞으로 와 있는, 내용으로 봐서는 일기 같지만 소설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제목이 붙어 있는 미사오가 보낸 노트를 보고 두 소녀의 죽음에 얽인 이야기를 파헤쳐간다.
제4장 '회전목마'는 작가인 '나'의 1인칭 시점의 이야기와 작가가 『삼월』을 쓰기 위해 답사를 하는 모습이 그려진 3인칭 시점의 이야기, 그리고 작가가 쓰는 이야기인 미즈노 리세의 이야기이다.
네 장으로 구성된, 각각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야기라고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모든 장이 의문의 책 《삼월》을 둘러싼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삼월》의 키워드로 석류를 등장시킨 것 처럼 『삼월』의 키워드로 고이즈미 야쿠모를 등장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각 장 어딘가에 등장하는 짙은 코듀로이 모자에 코트를 입은 고이즈미 야쿠모는 작품에 일관성을 주는 동시에 찾는 재미까지 준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묘한 기시감이 느껴지는데 안쪽 《삼월》의 내용과 바깥 쪽 『삼월』의 내용이 오버랩 되기 때문이다.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들여다 볼수록 이야기와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것이 꼭 삼월에만 해당 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온다리쿠의 작품을 읽다보면 전혀 다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다른 작품과 연관지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빠진다. 어딘선가 본 듯한,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얼기설기 이어져 있고 겹쳐져 있는 듯한 느낌. 실제로 삼월 연작 시리즈인 '흑과 다의 환상',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은 열매', '황혼녘 백합의 뼈'는 삼월의 내용을 발전 시킨 것들이기도 하다. 때로는 교차하고, 때로는 겹치고, 때로는 뒤섞이면서 영원히 순환한다는, 끝없이 돌고 도는 세계에 대한 온다리쿠의 노스탤지어를 정확히 이해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삼월이 재미있고 매력적인 이야기임에는 틀림없고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든 구렁처럼 앞으로도 온다리쿠의 세계로 나를 이끌 것 같다고는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