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30만부 기념 특별 리커버)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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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왕규는 나를 심판할 자격이 없는 친일파이며 민족반역자요. 나는 적어도 우리 조선민족을 외세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으나김왕규는 일제시대에 일본정부의 관료로 출세한 친일파요. 그런 친일파가해방된 세상에서도 여전히 애국자 행세를 하며 설치고 있소. 나는 그런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싸웠던 사람이오. 김왕규는 자기 입으로 자기를 애국자라 하며 나를 비애국민으로 매도하지만 과연 누가 애국자고 누가 비애국민이오? 내가 취조를 받기 위해 검사 방에 갈 때마다 김왕규는 양담배를수북이 쌓아놓고 피워댔소. 전쟁이 끝나고 우리 민족의 경제를 부흥, 발전시켜야 할 이 마당에 양담배를 피워대다니! 그가 과연 애국자요? 진실은언젠가 밝혀지기 마련이오. 누가 애국자였고 누가 이 민족을 위해 살았으며, 누가 사형을 언도받아야 할지는 역사가 반드시 증명할 것이오. 당신들이 나에게 사형이 아니라 능지처참형을 선고한다 할지라도 나는 지금까지내가 했던 모든 애국적 행위를 후회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미제의 앞잡이들이 선고하는 무엇도 인정하지 않소!"
그는 사형을 언도받았다.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그때까지 재판을 지켜보던 종조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비록 사형을 받았을망정 내 속이 후련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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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30만부 기념 특별 리커버)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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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욱아 너 하염없다는 말이 먼 말인 중 아냐?"
아버지는 말문이 막혔고 박선생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먹은 소주가 죄 눈물이 되어 나오는 것 같았다고, 생전 처음 취했던 아버지가 비틀비틀, 내 몸에 기대 걸으며해준 말이다. 고2 겨울이었다. 자기 손으로 형제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자책감을 안고 사는 이에게 하염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열일곱 여린 감수성에 새겨진 무늬는세월 속에 더욱 또렷해져 나는 간혹 하염없다는 말을 떠올리곤 했다. 아직도 나는 박선생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알지 못한다. 다만 하염없이 남은 인생을 견디고 있을, 만난 적 없는 아버지 친구의 하염없는 인생이 불쑥불쑥 내삶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곤 했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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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외한이지만 구텐베르크와 비교언급되거나 인쇄술의 발명이라면 보통 우리의 팔만대장경 아닌가요??
중국과 일본 문화 사이의 한국 문화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아예 모르시던가 알아도 일본의 주장만 취사 선택하시는듯)일본 문화의 우수성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심지어 BTS의 뷔가 일본의 가면을 차용했다고 하질 않나… 우리 나라 탈에 대해서는 전혀 알고자 하는 의지도 없는…. 이런 편협한 작가의 책이 어떻게 이렇게 찬사를 받고 심지어 한국 서점에서도 베스트셀러인지…?? 제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어렵습니다.

본래 몇백 년 전 중국에서 발명한 인쇄기를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돌여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구텐베르크는 이 오래된 기술을 이용해서 저렴하고 품질 좋은 사본을 찍어낼 수 있는 산업적 생산공정을 만들었다. 구텐베르크의 성공은 또다른 수입 기술, 즉 종이 덕분이었는데 역시 중국에서 만들어져 아랍세계를 거쳐 유럽에 들어왔다.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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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마크 게인이라는 미국 기자가 한국전에 대해서 쓴 《일본의 일기》라는책을 읽었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그는 미국의 정보활동이 도저히 상상할수 없을 만큼 교묘하고 탁월하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일본의 일기》에는 한국전은 전쟁을 필요로 했던 미국의 교묘한 도발에 김일성이 선제공격을 해 시작된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정도의 공작능력이라면 남로당의 핵심에 간첩을 침투시키는 것쯤은 쉬운 일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몇몇의 간첩행위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이 기회를 북쪽에서 분파적으로활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솟구쳤다. 그러나 그런 의심에 앞서 허탈했다. 남로당의 핵심 간부들이 미제의 첩자라면 도대체 지금까지 피를 흘리며 싸웠던 수많은 당원들은 무엇을 위해 싸운 것인가. 그들이 목숨을 바쳤던 투쟁 하나하나가 미제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것이라니! 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생길 수 있는가. 무엇이 문제인가. 눈조차 내리지 않은 겨울 들녘처럼 참을 수 없는 허전함이 밀려들었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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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의 딸 2
정지아 지음 / 필맥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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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2월 21일 비트 보초를 서던 중 박영발과 무전사, 여성비서 등에게 30연발 카빈 소총을 난사했다고 한다)했으며, 오금일도 김선우가 자폭한 직후 통명산에서 부상당한 채 포로로 잡혔으나 연행 직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남의 최고지도부는 최고지도부답게장렬한 최후를 맞아들인 것이다.
최고지도부가 모두 죽고 난 54년 여름 무렵에는 이미 모든 조직이 와해되고 살아남은 몇몇 사람이 개별적으로 간신히 목숨만 부지한 채 이리저리 쫓겨 다니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끊임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54년 12월 30일 대법원에서 무기로 형이 확정되었다. 목숨이야 건졌지만 사형보다 나을 것도 없었다. 평생을 적의 감옥에서 갇혀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더 끔찍했다. 단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 있으니 미래에 대한 희망, 해방의 꿈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약할 수 없는 기다림이 절망보다도 오히려 수십 배 고통스럽다는 것은그런 기다림을 경험한 자가 아니면 알지 못한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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