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작가님의 글은 참 솔직 담백하다. 

어릴땐 이런 담백함이 싫었던 것 같다. 고집이고 아집같이 느껴져서 소통이 안된다 생각했었다. 그래서 일부러 박완서 작가님의 책은 읽고 싶은 목록에서 제외하고 책을 읽었었던 기억도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글들이 참 담백하게 다가왔다. 행간읽기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도 알게 해 주는 글들이었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는 이러한 박완서 작가님의 솔직함이 담긴 에세이다. 1970년부터 2010년까지 생전에 쓰신 수많은 에세이 중 추린 글들을 엮은 책이라 더 그렇게 느껴지나... 글 한편 한편 담백한 울림이 있다. 
요즘 책들은 흐름이 궁금해 책장을 빨리 넘기고 싶어지는데 이 책은 천천히 곱씹듯 읽어지는 책이다. 
날 좋은 날 창가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며 천천히 읽고 싶은 책^^

책 한 권으로 일제시대 어린아이의 생각과 느낌, 할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 그 시절 엄마들의 머릿속에 박힌 성차별과 그에 반해 딸들이 신여성이 되기를 꿈꾸는 모순적인 행동, 아이가 느끼는 성차별, 글을 쓰게 된 계기, 소소한 생활에서 느껴지는 감정들,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까지. 참으로 많은 생각할 것들을 전해 준다.

개인 취향이겠지만 이 책의 일러스트 또한 한 몫 한다.
책을 보면서 일러스트가 이렇게 글과 잘 어울린단 생각이 드는건 오랜만인 것 같다. 화려한 듯 한 색채인데도 불구하고 화려함보다는 차분함이 느껴진다.

길은 사람의 다리가 낸 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이 낸 길이기도 하다. 누군가 아주 친절한 사람들과 이 길을 공유하고 있고 소통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내가 그 길에서 느끼는 고독은 처절하지 않고 감미롭다. (p.15)

우리가 아직은 악보다는 선을 믿고, 우리를 싣고 가는 역사의 흐름이 결국은 옳은 방향으로 흐를 것을 믿을 수 있는 것도 이 세상 악을 한꺼번에 처치할 것 같은 소리 높은 목청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소리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선, 무의식적인 믿음의 교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p.26)

숱한 꿈은 자라면서 맞닥뜨린 현실에 혼비백산, 지금은 그 편린조차 지니고 있지 않다. 나느 그때 내가 어떤 꿈을 꾸었는지 생각해낼 수가 없다. 다만 그 꿈과는 동떨어진 모습이 되어 늙어 가고 있음을 알 뿐이다. p.65

엄마한테 귀가 따갑게 들은, 남의 좋은 점을 찾아내면 네 속이 편하고 네 얼굴도 예뻐질 거라는 엄마의 잔소리는 철들고 어른 되어, 엄마한테 그런 소리를 안 듣게 된 후에 오히려 더 자주 생각나고, 어떡하든지 지키고 싶은 생활신조 같은 것이 되었습니다....남의 좋은 점만 보기 시작하면 자기에게도 이로운 것이, 그 좋은 점이 확대되어 그 사람이 정말 그렇게 좋은 사람으로 변해 간다는 사실입니다. p.134

사랑받을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p 139

"할머니, 왜 달이 나만 따라다녀?" p.160
- 아이시절 누구나 한 번쯤 하는 생각인가보다. 
딸이 어릴적 달을 볼 때 마다 했던 말, 동화책에서 봤던 말인데 박완서 작가님도 같은 생각을 했었고 그 분의 손녀도 같은 말을 했었다는 게 참 반갑다^^

시간이 나를 치유해준 것이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소중한 체험이 있다면 그건 시간이 해결 못 할 악운도 재앙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神)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p.252



이 글은 출판사에서 책을 협찬받아 개인적인 견해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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